매일신문

[박선주의 야생화 이야기] 겸손과 인내, 흑진주로 불리는 꽃, 맥문동

요즈음 잠 못 드는 열대야가 연일 계속이다. 이런 때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여름철 과일을 먹으면 그나마 더위를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다. 오늘은 이러한 여름을 대표하는 보라색 꽃을 소개하고자 한다. 산과 들에도 피지만 마을이나 아파트 근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작은 보라색 꽃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며,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견뎌낸 꽃, 겸손과 인내에 어울리는 꽃, 바로 맥문동이다.

맥문동 꽃이 보라색 한 송이로 피면 잘 보이지 않지만, 군락을 이루어 피면 더욱 눈부시게 보이는 꽃이다. 반딧불이가 암컷을 부를 때 처음에는 한 마리가 꼬리에서 반짝하지만 나중에는 두 마리, 세 마리, 여러 마리가 모여 한꺼번에 꼬리에서 반짝반짝 반딧불이를 켜는 동시 효과처럼 맥문동 꽃도 군락으로 있을 때 더 예쁘고 많은 곤충을 부른다.

맥문동을 흑진주라고도 부른다. 열매는 10~11월에 검푸르게 윤이 나는 둥근 장과가 달려 익으면서, 껍질이 벗겨져 자줏빛이 도는 흑색의 씨가 노출된다. 아마 이 씨가 흑진주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맥문동의 이름은 뿌리의 모양이 보리알과 비슷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추위를 잘 견뎌내는 보리를 닮아서 맥문동(麥門冬)이라고도 한다.

겨울은 대부분 나무가 땅속에서 긴 휴식을 통해 다가오는 봄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위한 힘을 키우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겨울이라 하여 모든 풀들이 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해살이 풀 같은 경우는 땅 위의 줄기와 잎은 다 말라서 없어져 버리고, 뿌리만 살아남았다가 다시 봄이 되면 줄기와 잎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맥문동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채 겨울을 난다고 하여 '겨우살이풀'이라고도 한다.

학술적인 이름은 Liriope muscari이고 영어로도 Liriope(리리오페)라 부른다. 리리오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인데 푸른 잎에 피어난 보라색 꽃을 샘솟는 맑은 물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맥문동 종류로는 맥문동 외에 개맥문동, 소엽맥문동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맥문동을 활엽맥문동으로 부른다. 개맥문동은 맥문동과 생김새가 유사하나 잎맥이 7~11개로, 맥문동이 11~15개로 차이가 있다. 꽃대가 잎 위에 나오면 맥문동, 잎 밑으로 들어가면 개맥문동이다. 그만큼 개맥문동은 꽃대(화경)가 작다. 소엽맥문동은 맥문동에 비해 잎이 작아 이름이 붙여졌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나 울릉도 지역에서 주로 자라 내륙에서는 보기 힘들다.

맥문동에는 사포닌이 많이 들어 있어 가래가 많고 기침이 많은 분들에게 좋다. 또한 베타시토스테롤(beta-sitosterol), 스티그마스테롤(stigmasterol) 등이 함유돼 있다. 베타시토스테롤은 혈액 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주고 혈당강화, 면역력 증진 등 효과를 가진다. 최근에는 각종 연구를 통해 전립선비대증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티그마스테롤은 식물성 스테롤의 일종으로 각종 스테로이드 호르몬 합성제제로 사용된다. 암을 억제하는 효능이 밝혀졌는데 특히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결장암 등 세포 억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맥문동을 차로 사용하려면 말린 뿌리를 물 1ℓ에 맥문동 뿌리 40g 정도로 넣고 끓여서 마시면 갈증해소에도 좋다.

한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해 숨이 헐떡이고,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며, 연일 열대야 현상으로 몸이 축 늘어진 요즈음,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 주변의 나무와 풀을 보라. 푹푹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내고 진한 보라색 꽃을 어우러지게 피우는 인내를 가진 맥문동, 진정한 여름나기를 하고 있는 야생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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