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수필-삶의 교과서, 지하철

김상민(대구 북구 동북로)

지난겨울, 조카랑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즐겁게 놀고 도시철도를 탔습니다. 기분이 들뜬 탓인지 환승할 도시철도가 들어온다는 방송을 못 들었습니다. 갈아타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는데 그때,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결아, 빨리 타자."

마음이 급하다 보니 저만 열차에 탔고 조카는 타지 못하고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조카는 유치원을 다니지만 겁이 많아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하지를 못합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조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결아, 니 옆에 어른 있지?" 물론 저는 아이 옆에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승강장에 어른 한 명 없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삼촌이 말할 게 있으니까 우리 삼촌이에요. 하고 바꿔주렴" "예" "여보세요?" 잠시 후 어떤 아저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분도 많이 놀랐을 겁니다. 전혀 모르는 아이가 자기 삼촌 전화를 받으라고 하니까요. 저는 애원을 했습니다. "우리 결이랑 다음 열차를 꼭 좀 타주세요. 저는 바로 한 정거장 앞에 있어요." 혹시나 애가 어떻게 될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알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분은 떨고 있는 저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기다리는 5분이 5년 같았습니다. 열차에 아이가 있는 걸 보고 전동차를 타고 아이랑 함께 울었습니다. 그분께 인사를 했더니 괜찮다는 듯 미소를 보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이어졌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그분이 갑자기 자리에 가방을 두고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리 양보하기 싫으니 가방을 두고 사라졌어. 꼴불견이네"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때, 가방 주인인 그 남자분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를 모셔 오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가방을 바닥에 내리더니 할머니를 자신의 자리에 앉히는 겁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평소 자리를 양보하기 싫어서 노약자를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앉아 있던 저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그분 덕분에 고개를 돌리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또 시민들 누구나가 이용하는 덕분에 도시철도가 어떤 곳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몸소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도시철도는 센스 만점의 용기와 안전의식을 배우는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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