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르도리안

몇 해 전 일본 유학 중인 조카가 여름방학을 맞아 돌아왔다. 시즈오카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미국'인도 친구 3명이 동행했다. 백인 여학생도 끼어 있었는데 대구'제주도 등을 여행할 참이었다. 혈기뿐인 청년들의 해외 나들이라 경비 걱정이 컸는지 아파트를 며칠 빌려달라는 전갈이 왔다. 마침 휴가철이라 기꺼이 허락하고 집을 비웠다.

며칠 후 제주도로 떠나는 아들 일행을 배웅하고 집에 들른 형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한국에 온 이상 보신탕을 꼭 먹어보겠다는 통에 당황했다는 얘기다. 개를 무척 아꼈던 형에게 호기심 차원이라도 외국인의 '구육(狗肉) 체험'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어디서 파는지도 알 턱이 없는 형은 어렵게 안내했다고 털어놓았다.

일상화의 차이는 있으나 개고기 식용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한국 등의 전유물은 아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 개 정육점이 등장했는데 개나 쥐고기를 사려는 시민들로 붐비는 잡지 삽화가 확인된다. 'Grande Boucherie Canine'(그랑 부셔리 카닌'대구육점) 현수막을 내건 개 도살장 사진도 남아 있다. '개'를 뜻하는 Canin(까느)나 Chien (시엥)은 라틴어 Canis(카니스)가 어원으로 영어 Canine(케이나인)도 같은 의미다.

시인 기욤 아뽈리네르는 1차 대전 당시 파리의 개 정육점을 묘사한 시 '죽음의 집'(La maison des morts)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 뮌헨이나 작센 지방, 스위스 동부 등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는데 독일에서 개 도살이 금지된 때가 1940년이다. 개고기 식습관이 2차 대전 무렵까지 유럽에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리우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가 보신탕 문제로 느닷없이 곤욕을 치렀다. 방송인 최여진의 어머니가 과거 기보배가 개고기를 먹은 것에 대해 SNS에 심한 욕설을 해대면서다. "어릴 때 개고기를 먹은 날 성적이 좋았다"는 기보배 아버지의 인터뷰를 문제 삼은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문제의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개고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언짢게 여기거나 비판할 수는 있다. 특히 잔인하고 비위생적인 개 도살은 뿌리 뽑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견인이라고 해도 이를 공개 비난하고 심한 욕설로 대응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요즘 논란이 된 '메갈리안'처럼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일방적으로 매도해 온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닮은 동물보호론자가 많아진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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