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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열여덟 살 최남선을 위한 변명

최남선
최남선

SNS 시대인 지금 '저 사람은 예쁘다'고 말하고, 그 말을 그대로 적어 보내면 상대방은 우리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곧 알아차린다. 우리는 지금 말과 글이 정확히 일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언문일치(言文一致) 상황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어서 누구도 그것을 고마워하거나 행복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예쁘다'고 말하고는 '화용월색'(花容月色)이라고 적었다. 말과 글이 다른 시대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글은 한문이었고, 한문은 동서양의 많은 지식을 담고 있었기에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은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지식은 문자를 통해서 전달되기에 문자를 아는 사람이 지식을 소유했고, 그것이 곧 권력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과 글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인 일이었다. 소수에게만 한정적으로 제공되던 지식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 평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남선은 언문일치를 통해 조선 대중에게 근대지식을 전파하려고 한 최초의 문학인으로 이와 같은 의식을 현실화한 것이 최초의 근대잡지 '소년'(1908)이다. 최남선의 나이 바로 열여덟 살 때였다.

'소년'에는 최초의 신체시(新體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비롯하여 에디슨, 나폴레옹 같은 위인이야기, 그리고 북극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다. 그때까지 조선 젊은이들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남선은 이 새로운 이야기를 기존 한문체가 아니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언문일치의 한글 중심 문장에 담아 조선 청년들에게 전달하였다. 더 많은 조선 청년들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여 평등하고 강건한 조선을 만들어가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최남선은 이처럼 새로운 조선의 건설을 열망하는 혁명적 의식을 지니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새로운 조선, 새로운 대한의 건설로 이끌었다. 그것은 열여덟의 최남선이었다. 안타깝게도 만년의 최남선은 일본제국의 영광을 선전하고 조선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등 자신이 지향한 삶, 견지해온 신념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었다.

최근 한국문인협회가 최남선 문학상과 이광수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나섰지만, 문화계 전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발표 10일 만에 자진 철회하였다. '친일'이라는 씻을 수 없는 원죄 탓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시절 최남선이 조선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는 값비싼 조선의 고전서적을 인쇄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보급함으로써 고전서적 보전과 지식대중화에 앞장섰는가 하면, 사비로 출판사를 설립하여 수많은 서구 문학서적을 번역, 소개하였다.

열여덟 소년 최남선의 언문일치에 대한 노력과 열정 덕분에 지금 우리는 말이 곧 글이 되는 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최남선의 이런 노력은 조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문학적 업적을 넘어, 조선 근대의 성립과 연결된 것이었다. 언문일치와 조선근대화와 관련한 최남선의 이런 노력에 대해서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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