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김제동의 말

영남대 졸업. 현 예술문화협동조합
영남대 졸업. 현 예술문화협동조합 '청연' 상임이사. 현 복합문화공간 '물레책방' 대표

요즘 김제동의 말이 화제다. 그가 지난 5일 저녁 경북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스물네 번째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본 한 장 없이' 40여 분 동안 토해낸 발언이 그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막을 입힌 발언 동영상도 올라와 있고, 발언 전문을 옮긴 기사도 나온다.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성주 군민들 앞에서 그는 헌법 조항을 하나하나 열거해가며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정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은 영토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며 "성주 군민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빨갱이라고 하거나 종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헌법적"이라며 "쫄 필요도 없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여러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소신 발언을 이어온 그는 그 덕에 빨갱이, 종북 아니냐는 오해도 여러 차례 받아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란 우스개로 대응해왔다. 이번에도 그의 발언 일부만 가져와 왜곡보도에 열을 올린 보수언론의 기사들은 가히 '악마의 편집'이라 할 만하다. 메시지(헌법에 의거한 사드 배치 반대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메신저(김제동)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건 헌법에 기반한 그의 주장에 마땅한 반박 논리를 찾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오랜 진행으로 다져진 그의 쉽고 명쾌한 입담에 힘입어 사드 반대 여론이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김제동은 대구와 인연이 많다. 대구와 인접한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 달성고와 계명문화대학을 졸업했고, 방송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직전까지 대구 우방랜드(현 이월드)와 대구야구장에서 MC로 오랫동안 활약한 바 있다. 그는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성공회대에 편입해 꾸준히 공부해왔다. 이번 발언만 보더라도 그가 단순 집회 참여가 아니라 사드와 헌법에 대해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제동의 SNS에는 7월 중순에 그가 직접 올린 게시물이 하나 있다. 거기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김제동의 말이 아닌 글이 있다.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 전문에 있는 첫 구절입니다. 헌법선언의 주체가 대한국민이라는 명백한 선언입니다. 대한국민의 선언이 헌법 전문의 첫 구절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헌법 37조 1항입니다. 36조까지 국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37조에 그래도 부족하다며 담은 구절입니다. 아름다운 연애편지 36장을 쓰고 37번째 장에서 여기 쓰여 있지 않다고 해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연인의 마음같이 느껴졌습니다. 손자를 아끼는 할머니가 꼬깃꼬깃 쌈지에 넣어 두셨다가 전해주는 용돈 같기도 해서 뭉클했습니다. 대한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상속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주는 섬뜩하고 통쾌한 할아버지의 유언장이기도 할 겁니다. 헌법입니다. 모든 대한국민은 말하고 표현할 권리를 지닙니다. (…)"

아주 평범한 이들을 '투사'로 만들 만큼 시절은 하 수상하다. 사드 배치 문제만 하더라도,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나저나 김제동 덕에 헌법 공부 잘 했다. 대학 시절 과제한다고 설렁설렁 읽고 말았던 헌법 전문도 오랜만에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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