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가 '전쟁 포기'(제9조)를 명시한 '평화헌법'의 개정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연합국의 강요'다. "법률도 잘 모르는 연합국군총사령부(GHQ) 소속 젊은이들에 의해 열흘 남짓 만에 쓰여진 것"이며 "패전국 일본이 승전국에 제출한 반성문"이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역사 왜곡이다. 전쟁 포기는 패전 직후 일본 주류 세력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그 첫 제안자가 일본'독일'이탈리아의 삼국 동맹을 추진한 A급 전범 시라토리 도시오(白鳥敏夫)다. 그는 A급 전범이 수감된 스가모(巢鴨) 구치소에서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외무장관에게 보낸 1945년 12월 10일 자 영문 편지에서 '천황제 유지 방안으로 전쟁 포기'를 제안했다,
맥아더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시데하라 기주로(幣原 喜重郞) 총리도 같은 제안을 했다. 1946년 1월 24일 시데하라와의 회담에서 시데하라는 자신에게 "군인인 당신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전쟁 폐지 결의"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헌법문제조사위원회'를 이끌며 '메이지 헌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반동적' 개정 헌법 초안을 마련해 맥아더의 분노를 샀던 마쓰모토 조지(松本烝治)는 훗날 자유당 헌법조사위원회에서 "군대의 존재를 명기한 '마쓰모토 안'을 GHQ에 제출할 때 시데하라가 찬성했다"며 이를 부정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6월 일본'미국'독일 시민으로 구성돼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 시민단체가 시데하라의 비서였던 히라노 사부로(平野三郞)가 '시데하라 선생에게 들은 전쟁포기 조항 등의 탄생'을 포함한 6점의 문서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문서에는 "시데하라 총리가 헌법에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포함하도록 맥아더에게 제안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재확인해주는 사료가 또 발견됐다. 1958년 맥아더가 다카야나기 겐조(高柳賢三) 전 헌법조사회 회장에게 보낸 편지다. 이는 다카야나기가 그 전해 12월에 맥아더에게 보낸 "새 헌법 초안을 만들 때 전쟁과 무력 보유 금지 문안을 넣은 것이 시데하라 전 총리인가, 귀하인가"라는 질의에 대한 답장으로 "(시데하라의 제안을 받고서)놀랐다. 마음으로부터 찬성이라고 말하자 총리는 명백하게 안도하는 표정을 보여 나를 감동시켰다"는 내용이다. 평화헌법은 연합국이 강요한 것이라며 게거품을 물었던 아베의 처지가 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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