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 2주기

"오 캡틴, 마이 캡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 등장한 명대사다. 극 중 로빈 윌리엄스는 주입식 교육을 우선시하는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교사 존 키팅을 연기했다. 키팅 선생은 오직 좋은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적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힌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을 외치며 소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학교를 떠나던 날, 학생들은 키팅 선생이 가르쳐준 휘트먼의 시를 인용해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에 올라 배웅한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선한 웃음, 하지만 보는 이를 가슴 뛰게 만든 열정적인 캐릭터. 로빈 윌리엄스는 그렇게 키팅 선생을 연기하며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TV와 영화를 통틀어 10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기고 2014년 8월 11일 돌연 세상을 떠났다. 사후 2주기를 맞은 지금 그리운 '캡틴'을 떠올리며 로빈 윌리엄스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2주기 맞아 추모 물결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후크'(1991)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이들이 25년 만에 모여 화제가 됐다. 로빈 윌리엄스의 2주기를 기념해 당시 '후크'의 포스터 속 모습을 재현하는 이벤트를 펼쳤다. 로빈 윌리엄스는 '후크'에서 피터 팬을 연기했다. 과거를 망각한 채 살아가다 자신이 피터 팬이란 사실을 깨닫고 후크 선장에 맞서 싸우는 인물이다. 꿈을 잃은 채 현실에 찌들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캐릭터다. 천진난만한 미소의 로빈 윌리엄스와 딱 맞아떨어지는 역할이었다.

'후크' 행사를 위해 모인 이들 중 현재까지 배우로 활동 중인 단테 바스코는 "로빈은 이 시대 가장 전설적인 아티스트"라며 로빈 윌리엄스를 추억했다. '후크'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또 다른 연기자 토마스 터락은 "로빈은 주변 모든 이들을 행복하고 웃게 만들어주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제임스 마디오도 "로빈은 항상 현장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로빈 윌리엄스의 2주기를 맞아 대표작 '굿 윌 헌팅'(1997)과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재개봉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한 '굿 윌 헌팅'은 명문대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천재 청년과 그의 재능을 발견한 교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천재 윌 역에 맷 데이먼이, 로빈 윌리엄스가 교수 숀을 연기했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도 아카데미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18일 재개봉된다. 같은 날 '죽은 시인의 사회'도 스크린에 걸린다. 국내 팬들에게 로빈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알린 영화였으며, 10대뿐 아니라 기성세대의 가슴까지 뜨겁게 만든 작품으로 지금까지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받은 수작이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어쨌든 두 편의 작품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인상적인 '멘토'를 연기했다. 혹은 삐딱하거나 나약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인생의 스승, 스크린을 통해 로빈 윌리엄스가 대중에 각인시킨 대표적인 이미지다.

◆긍정적 캐릭터의 안타까운 죽음

2년 전, 로빈 윌리엄스는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세. '굿모닝 베트남'(1987)에서 전쟁터 군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청년들의 길라잡이가 됐던 남자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에서 여장까지 하며 관객을 웃기고 절절한 부성애를 표현했던 중년의 아저씨, 정글에서 소환된 맹수에 맞서 싸우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쥬만지'(1995)의 명배우는 그렇게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생을 마감했다.

사망 직전까지 파킨슨병 초기 단계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세계의 영화 팬들을 울리고 웃겼던 '천생 배우'의 안타까운 부고 소식이었다.

로빈 윌리엄스의 부인 수잔 슈네이더는 "로빈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크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겨줬던 웃음과 환희의 순간에 초점이 집중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생전 로빈 윌리엄스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모하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사망 이후 세상은 굳이 로빈 윌리엄스의 암울했던 시기를 파고들지 않았다. 대개 이 정도의 스타가 자살을 하게 되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인데, 이번 케이스는 달랐다. 대중은 사망 직전 로빈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언론 역시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영원히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피터 팬, 잔혹한 현실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카르페 디엠'을 외치던 마음속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긍정적 캐릭터부터 악역까지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밝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건 그가 코미디를 기반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차츰 영화 쪽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그러던 중 '굿모닝 베트남'의 주연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됐다. 이 작품을 포함해 '죽은 시인의 사회'와 '피셔 킹'(1991) 등의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차례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조연상을 거머쥐었으며, 대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무려 6차례나 상을 가져갔다. 그 외에도 그래미상을 4번, 에미상도 2번이나 수상하는 등 공식적으로 명배우로 인정받으며 인기와 명예를 동시에 누렸다.

연기 폭의 한계도 없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보여준 것처럼 탁월한 코미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훈내를 풍기는가 하면 섬뜩한 악역을 맡으며 성공적인 변신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인썸니아'(2002), 그리고 '스토커'(2002)다. 마침 같은 해에 발표된 두 편의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기존의 이미지와 상반된 악역을 연기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유작 '앵그리스트맨'(2014)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불과 90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족과 화해하려 노력하는 괴팍한 노인을 연기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표'가 나이 들어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노인이 됐다는 설정.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 동안 가족에게 진심을 전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자체가 주는 임팩트보다 오롯이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만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해피피트' 시리즈나 '로봇'(2005) 등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미 '굿모닝 베트남'에서 보여준 것처럼 수없이 다양한 톤의 목소리 변조가 가능한 배우라 누구보다 애니메이션 더빙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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