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슈퍼 예산·슈퍼 택스

인지(認知)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동기를 가지면 그 동기와 관련된 분야의 인지 능력이 민감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령 배고픈 사람은 음식의 자극을 다른 자극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기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 관여하는 주요 기제이자 지렛대다.

동기는 출세나 금전, 학업성취도. 금연, 다이어트 등 외적인 결과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동기부여가 인격이나 명예, 심리적 만족도 등 인간 내면에 미치는 비중과 역할도 크다. 찰스 다윈이 "동기부여 능력과 같은 행동적인 특징이 인간 진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 것도 동기와 인간 행동의 상관관계를 잘 말해준다.

기부나 납세 같은 선택과 의무에도 동기부여의 법칙이 적용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죽음에 비유할 만큼 세금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족쇄다. 그런데 불사(不死)는 인간에게 꿈이지만 탈세는 현실이다. 만약 동기부여가 강하면 세금은 족쇄가 아니라 기부와 같은 선한 행위가 된다. 반면 동기부여가 약하면 탈세의 유혹이 납세 의지를 뛰어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부자는 자신의 부를 공공 봉사의무의 수단으로 여겼다. 이를 헬레니즘 시대의 슈퍼 세금(Super-Tax)인 '레이투르기아'(Leitourgia)라고 부른다. 로마의 부자들도 종종 파산할 정도로 공동체에 아낌없이 내놓는 대신 위세를 부렸다. 이를 '에우엘제티즘'(euergetism)이라고 하는데 동기부여가 인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내년 우리 예산 규모가 사상 최초로 4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예산은 386조4천억원이다. 2005년 예산 209조6천억원 이후 12년 만에 나라 살림 규모가 2배가 된다. 2009년에 300조원을 넘겼다.

세금은 예산의 원천이다. 부자의 슈퍼 세금이든 가난한 사람의 동전이든 세금 없이는 예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산은 개인 가정으로 치면 생활비다. 한 가정의 부모가 생활비 지출을 결정하듯 정부는 예산이라는 생활비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결정한다. 꼭 필요한 곳에,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국가 경영의 건전성이 달라진다. 만약 가정에서 생활비를 외식비'유흥비로 흥청망청 쓴다면 적자와 파산은 정해진 이치다. 400조원의 예산도 마찬가지다. 예산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더는 납세자의 손이 부끄러워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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