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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주간매일, 33년을 돌아보다(중)] 역대 인기코너들

초창기 주간매일의 인기코너였던
초창기 주간매일의 인기코너였던 '부동산총정보'(왼쪽)와 지상중매 '이런 신랑'신부 찾습니다'.

국내 최초로 무료 생활정보지로 우리나라 언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주간지 '주간매일'에는 33년의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인기코너가 있었다.

숱한 인기 연재물 중 1980년대 초창기 열혈 독자층을 형성했던 주간매일의 역대 인기코너를 소개한다.

무료 생활정보지의 성격을 띤 주간매일에 언론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은 시사칼럼이었다. 사회부조리와 정치 상황을 풍자'고발하는 칼럼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다. 당시 칼럼을 집필했던 김정길 TBC 사장(전 매일신문 부사장)은 "상가에서 상인들이, 가정에서 주부들이 가장 필요한 생활정보를 담고자 하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른 무가지나 찌라시와는 차별화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1983년 창간호부터 연재된 '지상중매-이런 신랑'신부 찾습니다' 코너는 당시 맞선시장에서 엄청난 대히트를 쳤다.

◆이런 신랑'신부 찾습니다

1983년 창간호부터 연재된 '지상중매-이런 신랑'신부 찾습니다' 코너는 당시 맞선시장에서 엄청난 대히트를 쳤다. 지금의 듀오 같은 결혼정보회사나 각종 만남주선 앱이나 사이트가 없던 시절, 주간매일의 지상중매는 선남선녀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던 것.

1983년 8월 20일 자에 실린 한 남성과 여성의 원하는 배우자상을 소개한다.

A씨=31세, 김해김씨,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 경제기획원 3급 공무원, 부친 교육자, 고향'거주지 대구, 5남매 중 장남. 찾는 여성=25~28세, 약사'교사, 인물 미인, 키나 가정환경은 불문.

B양=24세, 경대 수학과 졸, 교사, 고향 대구, 아산장씨, 장녀, 남동생 둘, 부친 교직, 키 163㎝, 미인임. 찾는 남성=29~30세, 교수'의사.

제법 많은 개인정보가 담겼으며, 독자들은 이 글을 보고 신문사로 전화를 해 만남이 이뤄졌단다. 30년 전에도 미인을 좋아하는 남자와 교수'의사 등 고수익 전문직을 원하는 여자의 패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동안 굉장한 인기를 끌었으며, 신문사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일에 지장이 생겨 이 전화만 받는 담당자를 따로 뒀다고 한다.

◆한눈에 보는 부동산 시세

부동산 정보는 예나 지금이나 핫한 소재다. 지금처럼 클릭 한 번이면 전국의 부동산 시세를 한눈에 볼 수 없던 시절, 주간매일은 대구시내 부동산 시세를 지면에 소개하는 '부동산총정보' 코너를 서비스했다. 이 부동산총정보에는 대구시내의 단독주택, 아파트, 대지, 점포'빌딩의 시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줬다. 독자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부동산총정보만 따로 스크랩하는 독자도 생겨날 정도였다.

당시 '부동산총정보'는 지역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거래시세를 알려주는 기준값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열혈독자들이 늘면서 부동산 시세와 함께 경매물건과 아파트 분양 정보도 함께 실었다. 또 지역 주택업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 부동산 경기 전망까지 다루기도 했다. 크고 작은 물건을 독자들끼리 정보를 교환, 매매하는 '우리끼리 사고 팝시다' 역시 인기였다.

※고정독자 시선 잡은 시사칼럼

무료 생활정보지의 성격을 띤 주간매일에 언론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은 시사칼럼이었다. 사회 부조리와 정치 상황을 풍자'고발하는 칼럼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다. 당시 칼럼을 집필했던 김정길 TBC 사장(전 매일신문 부사장)은 "상가에서 상인들이, 가정에서 주부들이 가장 필요한 생활정보를 담고자 하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른 무가지나 찌라시와는 차별화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시사칼럼이었다.

첫 번째 권두 칼럼은 '낭음횡보'였다. 세간의 '와이(Y)담(談)'을 빌려 매끄러운 필치로 사회부조리를 풍자, 고발했다. 반응은 대단했다. 김 사장은 열혈독자를 가장 많이 주간매일로 이끈 코너라고 회상했다. "세칭 와이담을 공부하기 위해 전세계 책 30권을 모두 읽었다. 반응이 대단했지만,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서 수위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항의가 들어와 자발적으로 접었다"고 했다.

이어 나온 칼럼인 '채근담'은 본격적으로 정치를 비평한 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명대의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에 실린 어록을 통해 당시 정치 상황을 본격적으로 비평하기 시작한 것. 김 사장이 소개한 칼럼 채근담과 관련된 일화 하나. "당시 칼럼에는 YS, DJ 등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한번은 새벽에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한 권력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칼럼을 읽고 전화를 했다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때 사장신부님이 무마시켜서 겨우 넘어갔는데, 서슬이 퍼랬다."

이후 나왔던 '중악성'까지 김 사장이 주간매일에서 갈고닦았던 칼럼들은 후일 '수암칼럼'으로 이어지는 촉매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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