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굿맨 데카 사운드의 향연

시작은 '굿맨' 스피커였다. 평소 나의 오디오 기기들을 손봐주는 K가 뜬금없는 제안을 던졌다.

"굿맨 데카 사운드가 선생님 취향에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탄노이'가 뿜어내는 멋진 그레고리안 성가에 빠져 있는 필자의 귀에 유혹의 소리가 끼어든 것이다.

"뭐라꼬? 또 스피커를 바꾸란 말인가."

"아뇨. 제가 갖고 있는 스피커라서 한번 들어나 보시라는 겁니다…헤헤."

'하베스'의 간지러운 통 울림에서 단단한 탄노이로 넘어온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라 신경이 좀 거슬렸다. 맑고 선명한 음색을 가진 굿맨 성향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본 경험도 한 이유였다. 자고로 오디오파일들은 귀가 엷어 남의 말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난치병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 필자는 앰프의 볼륨을 지그시 낮추며 호기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놈의 소리는 어떻디?"

"탄노이의 세련된 음색이나 분위기와는 딴판입니다. 세월의 무게감이나 야성미를 더해주지요."

"그럼 내일 가져와 보셔…일단 들어나 봅시다."

오디오 스피커를 바꾸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더구나 아날로그 시스템만 고집하는 필자에게는! 앰프와 스피커 간의 전류 비율(Ω)을 조정해야 하고, 케이블을 선택해야 하며, 카트리지와 궁합도 맞춰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엉뚱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똑같은 행위의 반복, 조바심, 시간 손실, 피곤함…상상만 해도 싫다. 하지만 필이 꽂혔는데 어쩌랴.

이튿날 K가 가져온 굿맨 데카 스피커를 보자 필자는 경악하고 말았다. 스피커 통도 없이 알맹이만 덩그러니 남은 굿맨은 영락없는 고철 덩어리였다. 종이 우퍼는 이어붙인 자국들이 곳곳에 선명했고, 게다가 색깔조차 다른 외짝이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져 당장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한쪽 스피커 뒷면에 새겨진 글자가 이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8년 7월 생산품!

필자보다 10년 연상인 스피커라~ 좋다~소리나 한번 들어보자. 그건 오해였다. 이 골동 스피커를 제대로 울리는데 어려운 가시밭길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양산의 황 씨에게 아리스토크렛 스피커통을 긴급 주문한 후 봉덕동 박 선생님을 찾아가 수납 작업을 하고, 앰프도 16Ω가 지원되는 것으로 바꿨으며, 룸 튜닝도 다시 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굿맨 데카 스피커에서 다미타 조의 '당신이 내 곁에서 떠난다면'(If you go away), 달리아 라비의 '자니 기타'가 곰삭은 사운드로 흘러나왔다. 고물딱지라고 핀잔만 주던 친구가 탄성을 질렀다.

"멋진 스피커네요. 60여 년 전의 사운드가 어땠는지 느낌으로 알게 됐습니다. 미안해 굿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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