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 개회식에서 난민 대표팀이 오륜기를 들고 참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 못지않게 힘든 시절을 거쳐 당당히 한 국가의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도 적지 않다.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이들은 이미 인생에서 승자다.
에디게르손 고메스(27)는 덴마크의 축구 선수다. 하지만 외모부터 동료와 크게 다르다. 하얀 피부에 금발인 동료와 달리 고메스는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다. 그의 어린 시절은 '튀는' 외모보다 더 평범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기니 비소에서 태어난 뒤 어머니와 함께 포르투갈로 이주, 5년 동안 빈민가에서 자랐다. 갱단과 마약상이 활보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게 일상인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덴마크인 새어머니를 따라 덴마크로 옮겨간 뒤에야 생활이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빈민가에서 자라며 사람 사는 정을 느낀 순간도 생생히 기억한다. 고메스는 "어머니가 일을 해야 해서 어린 나를 돌보지 못할 때면 이웃들이 챙겨줬다. 이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아직도 난 그 이웃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며 "나는 덴마크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인이라는 걸 항상 잊지 않는다"고 했다.
복싱 라이트플라이급에 출전한 암낫 루엔로엥(36'태국)은 재소자 출신 복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아프리카인과 비슷하게 생긴 탓에 정부가 태국 사람으로 등록하길 거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교도 갈 수 없었다. 그가 열다섯 살이 돼서야 나타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확인해줘 겨우 신분증을 받을 수 있었다.
루엔로엥은 먹고살기 위해 배운 무에타이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마약에 빠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강도질을 하다 15년형을 받았다. 교도소에서의 삶은 그를 바꿔놨다. 이곳에서 복싱을 배워 국가대표가 됐고, 1년 6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교도소 문을 나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메달을 따는 데 실패한 뒤 프로로 전향, IBF 플라이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루엔로엥은 "감옥은 내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곳이다. 그곳에서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 집중력과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판단력을 배웠다"며 "돈을 생각하면 프로로 남는 게 낫다. 하지만 나를 국가대표로 뽑아준 나라와 가족을 위해 아마추어 선수로 뛸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시련을 딛고 금메달까지 거머쥔 선수들도 있다. 브라질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긴 여자 유도의 하파엘라 시우바(24)는 총과 마약이 흔한 리우의 빈민가 '시티 오브 갓' 출신이다. 그는 "내 고향 '시티 오브 갓'의 아이들은 항상 내게 힘을 준다. 그곳 아이들이 나를 보고 꿈을 키워 브라질 올림픽팀의 일원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 기계체조 흑인 선수 시몬 바일스(19'미국)는 인종 차별과 가난을 딛고 4관왕에 올랐다. 그는 어머니가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여서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바일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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