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에 어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다. 엄마, 아빠와 때로는 웃고, 슬퍼하면서 그냥 함께 살아가는 부부이자,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은 항상 검게 그을려, 어떻게 표현하자면 탈색된 얼굴이었다. 아무리 고운 빛깔도 제 빛을 잃으면 보기가 조금은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가끔 도시로 함께 외출할 때면, 주위 사람들에게 시골 촌사람이라고 시선을 끌까 봐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항상 아버지는 그렇게 고달프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지난날 죄책감이 뼛속 저리도록, 철없던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자꾸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저려온다.
어른이 되어서야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철 늦은 꽃봉오리 같았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니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 대한 불효였다. 후회스럽다. 세월의 연륜이 더하면서 깊이 팬 주름살, 억센 손마디 마디가 이렇게 나를 키우시기 위한 희생의 고마운 손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넓은 손이 정말 아름답고 돋보인다. 철이 들어 버리자 너무 연로하신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께서는 6'25 전쟁이 한창일 때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칠곡 가산 전투에서 온몸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셨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전쟁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그때 많은 전우를 잃으신 데 대하여 가슴 아파하셨다. 눈물 서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선조들의 피로 일구어낸 내 조국, 나의 존재에 대해서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서나 누구에게나 6'25 참전용사라고 자랑스럽게 노래하신다. 처음에는 때와 장소도 없는 그런 말씀에 조금은 듣기가 거북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넓게 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커다란 힘이 생긴다.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그 큰 공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나날들, 이제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비바람이 휘몰아칠 때 아버지라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있어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숙한 중년의 여인으로 단장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 사는 것도 나의 부단한 노력,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짧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옛말에 '할아버지 그늘이 손자 거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의 어질고 따뜻한 성품이 나의 인격 성숙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품이 어질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욕심 없고, 바르고, 당신보다 남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지의 깨달음은 새로운 길을 틔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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