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꺼운 외투 필요한 8월의 스코틀랜드

비바람 치는 폭풍의 언덕, 세상의 끝에서 위로를 받다

엘렌 도난성의 모습. 스코틀랜드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성이기도 하다.
엘렌 도난성의 모습. 스코틀랜드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성이기도 하다.
82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만나는 산과 호수들. 곳곳이 뷰 포인트다.
82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만나는 산과 호수들. 곳곳이 뷰 포인트다.
스카이섬에서 만나는 퀼트락의 전경. 절경이라는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스카이섬에서 만나는 퀼트락의 전경. 절경이라는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영국 북부지역 스코틀랜드는 8월이지만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할 만큼 서늘했다. 해가 있을 때는 그런대로 견딜 만하지만, 비가 오면 따뜻한 옷이 필요했다. '폭풍의 언덕'으로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 그곳에서 거의 매일 비와 바람을 만나고 거칠고 웅장한 산을 만나면서 마음은 점점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거칠고 황량한 그곳에서 뜻밖에 위로를 얻었다.

◆황량함과 쓸쓸함, 82번 국도

스코틀랜드 북부지역의 도시 글렌코로 가는 82번 국도는 황량하고 쓸쓸했다. 스코틀랜드 내셔널 루트답게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과 조용한 호수, 그리고 좁은 길…. 비현실적인 광경이 이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1,000m가 넘는 세 자매 봉우리를 배경으로 들판에는 아주 작은 보라색 히드꽃과 엉겅퀴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빙하가 할퀴고 간 날카로운 산세와 아무도 발을 담그지 않은 듯한 고요한 호수는 비와 바람을 만나 멋진 조화를 이뤄냈다.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었다.

이 길에서 영화 '007 스카이폴' 촬영지인 글렌코계곡을 만날 수 있었다. 빙하가 지나가면서 형성된 16㎞에 달하는 U자 계곡인 글렌코계곡에는 스코틀랜드의 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 1692년 잉글랜드의 사주를 받은 스코틀랜드의 캠빌 가문이 다른 씨족 맥도날드 가문을 몰살한 잔인한 역사의 현장이다. '한탄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82번 국도를 따라 끝이 없을 듯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는 스카이섬의 절경을 위한 서막이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 스카이섬

스코틀랜드 여행의 백미인 스카이섬(Isle of skye). 스카이는 '하늘'이라는 뜻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켈트족이 쓰는 게일어로 '구름'이라는 뜻이다. 제주도보다 약간 작은 스카이섬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곳이라 하여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섬이라고 하지만 다리가 있어 육지와 연결돼 있다.

이 섬에는 인공의 흔적이 거의 없다. 관광객을 노리는 노점상도 없고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어떤 설치물도 만들지 않았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섬으로 가려면 자동차 혹은 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배로 진입하려면 섬 남단의 아마데일 항구에서 엘골 지역으로 접근하면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엘골에서 코르쉬크호수로 들어가는 배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바다표범을 만났다. 배에서 내려 거대한 호수를 끼고 걷노라면 어느새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오래된 연인이나 많은 세월을 나눈 중년부부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젊은 무리들은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스카이섬을 돌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스카이섬 여행은 보통 2박 3일 코스로 이뤄진다. 하루는 중남부 그리고 하루는 북서부를 둘러보는 방법이다. 스카이섬의 큰 도시인 포트리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퀼트락을 만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인 퀼트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160만 년 전 생성된 지층에 57만 년 전의 강력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바위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바위 앞 폭포는 장관이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트레킹으로 유명한 퀼랑지역을 만나게 된다. 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아래로 쭉 펼쳐져 있는 산과 계곡을 보고 있으면 한마디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으면서 마음은 오히려 더 평온해지고 폭신해졌다.

◆아름다운 성과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고성(古城) 여행이다. 스카이섬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인버러레이성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다. 18세기 캠밸 공작이 지은 성으로 성 자체도 아름답지만 정원과 주변 풍광이 압권이다.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다. 잠깐 고성의 주인이 되어 정원을 거닐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엘렌 도난성도 지나칠 수 없다. 스코틀랜드의 아이콘인 이 성은 호수를 연하고 있는 아름다운 성이다. 두이치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을 둘러싼 성은 1214년에 지어졌지만 20세기 초에 다시 복원되었다. 복원이 되었다고는 하나 약간은 허물어진 모습을 하고 있어 비바람의 스코틀랜드 풍광과 멋지게 어울린다. 스코틀랜드 정신이 살아있는 저항의 성이기도 하다. 영화 '하이랜더'(highlander), '남 주기 아까운 그녀'(made of honors) 촬영지다. 여기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괴물이 살고 있다는 네스호수를 만나게 된다. 네스호를 바라보는 우르쿠하르트성은 폐허가 된 채로 허물어져 있다. 마녀들의 저주를 받아 불행이 끊이지 않다가 망한,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성이다.

하이랜드 지역의 호수와 산을 보면서 3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시내 전역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에든버러에 다다른다.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에든버러성은 철옹성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거기서 1마일 떨어져 있는 홀리루드 궁전은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 묵는 곳이다. 궁 내부를 둘러보면 왕들의 생활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에든버러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칼튼 힐에 올라서 시내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는 것도 멋진 추억거리다. 요즈음은 9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에든버러는 런던 다음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며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도시다. 성 아래 건초상 구역인 '글라스마켓'에는 작은 펍(선술집)들이 즐비하고, 4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오래된 펍에서 에일맥주를 한잔하며 그곳 사람들의 문화에 젖어보는 것도 스코틀랜드 여행의 묘미다. 영국의 대표적인 맥주인 에일맥주는 라거보다 향이 풍부하며 보디감이 묵직하고 깊다. 여기에 '피시 앤드 칩스'를 함께하면 딱 좋다. 여행의 피로가 사라지고 감흥이 돋아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