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통영, 그 바다

혼자였다. 세상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혼자.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쯤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바닷가 외진 마을에 살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낮이면 바다와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를 보며 안락을 누리다가도 해 질 녘 떠나는 배를 보면 고향이 지독하게 그리워 돌아가고 싶어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바다는 내게 밤마다 위리안치였다가 날이 밝아지면 아름다움의 극치로 욱여넣어 밤의 두려움을 상쇄시켰던 곳이다. 그런 내게 유일한 낙은 시내로 나가 피아노를 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위안이 될 수 없었다. 피아노가 놓여 있는 방은 진공 부스 같았다. 결국 1년쯤 다니다 외로움에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그 공간에서 뛰쳐나왔다.

다시 화실을 찾아갔다. 마음에 드는 수채화를 그릴 때까지 그 일은 꼭 해내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느 날 눈빛이 아주 따스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통영의 극단 벅수골에서 연기를 하고 수필도 쓰며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했다. 이후 그녀가 한 번씩 찾아왔다. 어떤 날은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그녀가 기타를 치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녀는 오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어쩌다 통영을 찾아가면 카페 마담이 잘 어울리는 그녀가 있어 좋았다.

삶의 일부를 바닷가에서 보낸 내 코끝에는 비린내가 남았고 몸에는 바다가 담겨 있어 가끔 격랑이 일어난다. 하지만 아직 바다를 맘껏 노래하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아보지도 않고 바다를 노래한 시인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통영 바다를 잘 차려내고 싶다.

 

사랑을 아는 바다에 노을이 지고 있다

애월, 하고 부르면 명치끝이 저린 저녁

노을은 하고 싶은 말들 다 풀어놓고 있다

누군가에게 문득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바람과 먼 파도와 수평선이 이끌고 온

그 말을 다 받아 담은 편지를 전하고 싶다

애월은 달빛 가장자리, 사랑을 하는 바다

무장 서럽도록 뼈저린 이가 찾아와서

물결을 매만지는 일만 거듭하게 하고 있다.

「애월바다」 이정환

살아가는 동안 위의 시조처럼 사랑을 이해하기에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바다,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까지도 다 쓰다듬을 수 있는 그런 바다 앞에 한 번쯤 서 보고 싶다. 떠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바다를 여름이 다 가기 전 보고 싶다. 그리고 바다 앞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을 미주알고주알 하소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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