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실력에 경제관념까지 철저한데 막상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이나 역사에 대한 개념은 없다. 대한민국 10대들의 '워너비 잡'으로 꼽히는 아이돌 스타들의 실상이다. 요즘 아이돌 스타들은 과거와 달리 각 기획사에서 오랜 연습 기간을 거치는 동안 무대를 위한 훈련뿐 아니라 연예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지적 소양까지 쌓으며 혹독하게 트레이닝한다. 이전에는 아이돌 스타로서의 생명이 다한 뒤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예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가능성을 냉정히 평가하고 향후 움직일 방향을 설정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에 필요한 능력을 쌓는 과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역사 공부를 등한시해 논란의 중심에 설 때가 많다. 이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로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티파니, 광복절에 욱일기 게재 논란
걸그룹 소녀시대의 티파니는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경솔한 행동을 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날 티파니가 SNS에 올린 건 일본에서 'SM타운 콘서트'를 마치고 소녀시대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와 함께 근황을 전한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다만, 게시물 안에 일장기 이모티콘을 포함한 게 문제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또 다른 SNS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전범기) 문양이 쓰인 '도쿄 재팬'이란 로고를 삽입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광복절에 자랑스레 SNS에 올린 전범기.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다.
사태 발생 이후 대중은 티파니가 출연 중인 KBS2 TV 인기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온라인 게시판까지 점령했다. 요구 사항은 티파니의 하차였다. 거센 비난 여론에 티파니는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이 사과문은 그저 '모두 다 내 잘못'이란 식의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구성돼 오히려 대중의 분노를 부추겼다.
티파니는 잘 알려진 것처럼 재미교포 3세다. 이 때문에 혹자는 '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한국 역사를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감싸기도 한다. 하지만 티파니가 연습생 시절부터 10여 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오랜 외국 생활'을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수백억원대 탈세를 저지르는 기업인, 밥 먹듯이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인 등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민들을 힘들게 만드는 소위 각계의 '리더'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러니 철딱서니 없는 여자 연예인 하나를 콕 집어내 사장시키자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벼랑 끝에서 잘못을 되짚어보며 반성하는 시간은 가졌으면 한다. 어차피 현재의 여론을 감안할 때 조속한 연예계 복귀가 쉽진 않을 것 같다.
광복절 당일 '저는 일본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라며 욱일기 문양을 SNS에 올리는 한류스타라니, 그 표정은 분명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고 해맑았을 게 분명하다.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면,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진 못했을 게다.
◆혜리'장현승 등 꾸준한 욱일기 논란
욱일기 문양을 잘못 사용해 문제가 된 건 티파니뿐만이 아니다. 앞서 걸스데이 멤버 혜리도 2012년 한 행사장의 리허설 과정에서 욱일기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논란을 부추겼다. 해외 팬들이 선물로 보내준 옷을 별 생각 없이 입고 나왔다가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혜리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당연히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엔 소속사를 통해 공식 사과의 말을 전해야 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트러블 메이커' 등의 무대를 함께 꾸미던 아이돌 스타 장현승과 현아가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새겨진 후드티를 착용해 유사 논란에 휩싸였다. SBS '더 쇼' 녹화 준비 과정에서 대기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공개한 게 화근이 됐다.
두 사람이 입은 커플 후드티에는 한 여성이 꽃봉오리가 달린 봉을 들고 있고 그 뒤로 붉은빛이 뻗어나가는 욱일기의 디자인이 섞여 있었다. 두 사람의 소속사가 나서 "욱일기 문양이 아니다"라는 변명을 내놨다가 비난 여론을 키우기만 했다.
앞서 빅뱅의 탑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욱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문양을 붙인 점퍼를 입고 나왔다. 빅뱅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CEO 양현석이 직접 사과 글을 올리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양현석은 사과 글에서 '탑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스태프들조차 그 표식이 의미하는 걸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며 '몰랐다는 이유로 용서받지 못할 실수'라고 잘못을 인정했다.
아이돌 그룹 빅스도 일본 관광 중 현지 기념품으로 만들어진 모자를 쓰고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욱일기를 배경으로 '일본 제일'이란 뜻으로 해석되는 '日本一'이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였다.
한국계 영국인 모델 김상우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의 화보를 찍으며 일본 국기를 들거나 욱일기 문양으로 도배된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는 콘셉트를 '당당하게' 소화해 문제가 됐다.
◆주도면밀 일본 전략, 속수무책 한국
욱일기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군대를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사용 중단됐다. 그러다 일본은 1954년 자위대 창설을 계기로 슬그머니 욱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역사를 왜곡하며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자국 젊은이들부터 거부감 없이 욱일기를 받아들이도록 주도면밀한 작업을 펼쳤다. 2013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한일전에 일본 응원단이 대형 욱일기를 들고 나와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던 욱일기를 공식 사용하겠다고 나서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욱일기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에 활용돼 전 세계로 유통되기도 한다. 올해 초에도 나이키의 '에어조던12 레트로 더마스터'가 욱일기 형상의 디자인을 활용했다가 불매운동에 밀려 한국 내 출시를 취소했다.
그 외 프랑스 브랜드 생 로랑도 욱일기 문양의 재킷을 만들어 치열한 논쟁을 펼쳐야 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욱일기는 미국,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여러 브랜드의 디자인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의 젊은 스타들이 '유명한 디자인' 정도로 생각하고 욱일기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거나 가방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본의 '전략'에 넘어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입시교육에 찌들어 욱일기의 의미 따위는 모르고 살아가는 10대가 대부분이다. 아이돌 스타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스타들의 경우라면 자신들이 주 무대로 활동하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 인식하는 정도의 소양은 갖춰야 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필자 역시 애국자 소리는 못 듣고 사는데, 한국을 기반으로 떼돈 벌고 산다는 이유로 아이돌 스타들에게 무작정 애국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이 정도의 '기본'도 못 갖춘 상태에서 스타랍시고 무대에 올라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창피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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