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로진학 상담실에서] 진로 고민 유발자

2학기부터 시행되는 전문대 연계 2학년 직업과정 희망자 신청 기간에 A군이 지원을 해왔다. 평소에 학업에 무관심하고, 당연히 수업 시간에도 열성이 없는 학생이었다. 신청서를 주니 금방 작성을 해왔다. 학과 선택란은 3순위까지 채워져 있었다. 보아하니 선택 학과에 유사성이 없다. 순간, 이건 "일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과 같은 평소의 생각을 잘 펼쳐보일 때인 것이다.

선택은 포기를 동반한다. 직업과정을 선택하면 원칙적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머뭇거리는 학생이 있다. 원하면 전문대 진학이나 취업 2년 경과 후 재직자 전형으로 진학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여도 마찬가지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학업에 대한 열의나 관심은 없으나 남 보기에 그럴듯한 대학에 진학하고픈 욕심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대학은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직업과정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그 동기를 물어보면 '현재의 학업 성취도가 낮거나 학업에 흥미가 없어서'라는 대답이 많다. 즉, 공부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직업과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인정받는 분야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진로 선택의 동기가 학업의 포기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학생들은 직업과정의 분야도 그 선택 기준이 '쉬운 곳'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직업과정을 선택한 학생들은 대체로 교육 기간 중에는 만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싫은 공부'를 안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취업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부보다 더 힘들다 싶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 그 분야에 적성이 맞거나 흥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이제 힘든 대상이 공부에서 일로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군 복무 후 대학 진학을 의논하는 학생 중에서도 가끔 이런 사례가 있다.

공부를 잘 하여 성적만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과 공부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직업과정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진정한 의미의 진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진로전담교사는 진로 고민의 해결사로서 역할이 기대되지만 이런 학생들에게는 진로 고민 유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직업과정 희망 학생들에게 지금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포기를 의미하는지, 그 내용을 충분히 알도록 하는 상담이 중요하겠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으로 하여금 직업과정을 포기하도록 하자는 말이 아니다. 선택을 결정하기 전,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소상히 알게 되면 당연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고민 후의 선택이 더욱 소중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면, 갈등과 고민이 수반되는 선택의 과정에서 인간적 성숙과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A군은 충분히 알겠다는 표정으로 상담을 마치고 나간다. 그러나, 선택학과를 고친다거나 생각이 바뀌면 다시 오겠다는 말은 없다. 상담 후에 무력감을 느끼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런 사례인가? A군을 계속 관찰해 보기로 하며 일을 접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