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무 뒤에 천 캔버스만 세웠을 뿐인데…이명호 사진작가 초대전

봉산문화회관 10월 16일(일)까지

이명호 작
이명호 작 '트리'

촬영장소 수차례 탐사하고 수백 명 동원해 퍼포먼스

사막 가운데 흰 천 들고 찍은 '신기루' 시리즈도 눈길

봉산문화회관이 기획한 기억공작소의 올해 네 번째 초대작가는 이명호 사진작가이다. 중앙대 사진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있는 이 작가는 최근 국내외에서 가장 핫한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설치, 조각, 영상,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이 작가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꾸준히 주목받으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이 작가는 10여 년을 작업했지만 작품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엄청난 스케일로 시간과 땀을 들여 작품을 찍기 때문이다. 광활한 초원이나 사막에서 특정한 나무 등을 피사체로 선택하고 이 피사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해 촬영한다.

피사체를 선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캔버스를 세우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완성된 나무나 사막 풍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나무만 있으면 그냥 평범한 자연물이지만 천이 캔버스 역할을 해 회화와 사진이 결합된 작품이 된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작업을 하기 전에 개념을 먼저 떠올린다.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데 이걸 현실에서 구체화시키는 게 내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봉산문화회관에서 진행 중인 '나무와 신기루'전에도 이 같은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무' 시리즈 속 나무들은 액자 속 그림 같다. 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캔버스를 배경으로 들판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나무는 사실적으로 그려 놓은 회화처럼 캔버스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다. 그 뒤에는 하늘, 옆으로는 한두 그루의 작은 나무들이 멀리 보인다. 나무들은 실제 존재하지만 비현실적인 그림처럼 보인다. 이 낯선 풍경은 거대한 캔버스 천을 야외 들판으로 들고 나와 나무 뒤에 세워두고 촬영한 것이다.

반면 '신기루' 시리즈는 나무 시리즈와는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은빛 파도를 실은 바다의 수평선이 광활한 모래 해변을 넘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바다 저 멀리 가운데에는 흐릿하게 섬이 보인다. 낯설지 않은 바다와 오아시스 풍경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흰 천을 들고 사막 가운데 서 있는 연출 장면을 멀리서 촬영한 것이다.

정종구 큐레이터는 "작품은 작가가 수차례 탐사를 거쳐 촬영장소를 발굴한 뒤 수십~수백 명을 동원해 실시한 대규모 퍼포먼스의 산물이다. 자연 자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고, 자연 속에 끼워넣듯 텅 빈 캔버스를 설치해 피사체를 캔버스로 떠내듯 연출한다"며 "작품은 담백하고 함축적인 한 장의 사진이미지로 제시되지만 그 과정에서 미술의 다양한 장르가 동원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10월 16일(일)까지.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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