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이것은 비아그라가 아니다

비아그라가 구한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다. 비아그라를 개발한 파이저사는 이 약이 처음 개발되어 출시된 1998년을 시점으로 비아그라가 구한 생물체들을 알아보는 히펠 형제의 연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히펠 형제가 주목한 동물은 수컷 바다표범과 순록이었다. 비아그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다표범은 '해구신'이라는 상품으로 알려진 생식기로, 순록은 뿔로 아시아에서 정력제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1998년 비아그라 발매 후 캐나다산 수컷 표범의 생식기 시장 규모는 50% 감소했다. 또한 캐나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1년 기준 한 해 평균 25만 마리가 잡히던 바다표범이 이후 9만 마리 이하까지 포획량이 줄었다. 이는 개체 수의 감소가 아니라 비아그라로 인해 해구신의 가치가 떨어져 생긴 결과였다. 비아그라가 남자뿐만 아니라 바다표범도 구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온갖 잡동사니들 어느 하나도 사연이 없는 것이 없다. 우리가 아침 대용으로 먹곤 하는 시리얼은 원래 존 켈로그 박사가 자위 예방 식품으로 개발한 것이고, 1차대전 당시 붕대로 써야 할 면이 부족해 킴벌리 클라크가 만든 셀루코튼은 붕대보다는 야전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의 생리대로 더 인기를 끌었다.

용도를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사물들도 그 사물들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 아주 정교하게 담배 파이프 하나를 그려 놓고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적어 둔 것이 있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선 어째서 파이프가 아니라고 써뒀을까? 어쩌면 우리 일상에 있는 가장 단순한 사물이라는 것도 사실은 내가 알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화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물의 '용도'를 아는 것으로 그 사물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물의 쓰임새를 아는 것을 그 사물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시리얼처럼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시작을 갖고 있기도 하고, 셀루코튼처럼 전혀 다른 효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잡동사니 사물에도 이러한 깊이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해 무엇할까. 시리얼, 셀루코튼, 비아그라 정도의 사연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름 모를 이웃도, 버스에서 내 몸을 스친 아주머니도, 기다리던 택배를 배달해주는 기사분도, 내가 알고 있는 단지 그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누군가의 사적인 면을 캐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 다른 누군가의 비밀 대신, 누군가의 용도 대신, 그의 존재 자체에 마주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파이프도 단지 파이프가 아니고, 비아그라도 단지 비아그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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