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건희 동영상, 그 이후

공공연하게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요즘의 대한민국이다. 정치'경제 권력의 상층부에서 터무니없는 논리가 횡행하고, 본질이 뒤바뀐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힘센 사람이 억지를 부리는 '비상식의 상식화'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신문 1면에는 연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뉴스가 오르내린다. 우 수석이 특별감찰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자, 급기야 청와대는 정말 낯 뜨거운, 해괴망측한 논리를 들이댔다. 청와대가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대통령 흔들기에 나섰다"고 발표하니, 황당해도 이만큼 황당한 상황은 좀체 없었다.

청와대가 지목한 '부패 기득권 세력'은 조선일보를, '좌파 세력'은 야당과 진보 세력을 의미하는 듯하고, 일편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우 수석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사건의 본질은 직분을 이용한 특혜'비리 의혹이고 나머지는 곁가지일 뿐이다. 초교생이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터인데, 그걸 모르다니 헛웃음만 나온다.

'비상식의 상식화'의 최고봉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사건이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지난달 21일 첫 보도를 한 이후 한국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하더니, 1개월 만에 후속보도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가수 박유천의 성폭행 의혹 사건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성매매 사건은 큰 비중으로 연일 지면을 장식하는데, 이 회장 뉴스는 '가뭄에 콩 나듯' 찔끔찔끔 나온다. 그것도 대부분 속칭 마이너 언론에서다.

주요 신문'방송이 삼성으로부터 연간 수십~수백억원의 광고비를 받는 것을 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뉴스타파'가 '경영의 신' '한국을 빛낸 위인'을 모욕한 저질 언론으로 매도되고 '몰카의 사생활 침해' '협박범의 범죄'가 더 문제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정말 양심 불량이다. 유명인의 잘못된 사생활은 일단 공개되면 대형 스캔들인 만큼 이를 자세하게 다루고 사회적 교훈으로 삼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몇몇 단체와 개인이 이 회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며칠 전 경향신문은 '검찰에서 뉴스타파에 동영상 제출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렇다면 검찰이 아예 수사를 할 생각이 없거나, 시간을 질질 끌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법과 원칙이 권력과 금력에 따라 춤을 춘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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