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은 과욕인가 보다. 전국이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뉴스마저 불쾌지수를 높인다. 최근 청와대에서 있은 식사 자리가 그랬다. 요즘 뜨거운 이슈인 전기료 누진제 폭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도 오간 자리였다는데, 참석자 모두 긴소매 외투차림이었다. 당시 청와대의 냉방 온도가 몇 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귀하신' 가정용 에어컨을 켜기가 겁나서 속옷차림으로 더위를 견뎌야 하는 서민들의 시선은 상관치 않는 듯해 보였다.
음식 메뉴도 유감스럽다. 측근 중의 측근이 여당 대표가 되어 금의환향했으니 대통령으로서는 얼마나 반가웠겠으며 귀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겠느냐마는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송로버섯, 샥스핀찜, 캐비어가 국민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청와대에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 기능이 작동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치인에게는 어느 정도의 쇼맨십을 통한 리더십 확보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43년 전 청와대에서 보였던 모습을 보자. 1973년 10월 오일쇼크가 터지자 정부는 범국민적 에너지 절감 운동을 펼쳤는데 대통령이 앞장을 섰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샹들리에부터 끄고 스탠드 전등 하나만 켰다. 춥고 어두운 집무실에서 그는 야전 점퍼 차림으로 업무를 봤다. 대통령이 나서니 공직자, 기업, 국민들도 에너지 절감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평소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모습을 언론에 자주 비쳐 자신의 서민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활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청와대에 손님이 오면 으레 칼국수를 내놓았다. 옛 임금들도 가뭄과 혹서 등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면 수라상에 오르는 반찬 가짓수부터 줄이라고 명했다. 위정자들의 이런 행동은 누군가에게 '코스프레'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단으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중에 으뜸은 국민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다. '중용'을 보면, 성인(聖人)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으로 '총명예지'(聰明睿智)라는 대목이 나온다. 잘 듣고(聰) 잘 보며(明) 사리에 밝고(睿) 지혜로워야(智) 한다는 것이다. 네 가지 덕목 가운데 '잘 듣는다'는 단어가 맨 앞에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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