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이모(56) 씨는 지난 2월 14일 부산에 놀러 간 아들(22)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를 내 피해자가 전치 12주 부상을 입었는데 피해자 측에서 합의금 1천만원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기초생활 급여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 씨에게 1천만원은 보통 버거운 액수가 아니었다. 이 씨는 공탁금이라도 걸어 아들을 구제하려 했지만 피해자 측에서 인적사항 열람을 거부, 법원에서 공탁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아들은 지난 11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씨는 "사정이 어려워 합의를 못한 사람은 공탁이라도 걸어 양형을 줄일 수 있어야 하는데 '무전유죄'라고 돈이 없어 아들을 교도소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탄식했다.
가해자의 양형을 낮출 수 있는 '공탁'이 피해자의 개인정보 없이는 불가능해지면서 거액의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상대적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형사 공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보지 못했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기는 제도다. 2009년 12월 22일부터 교통사고도 형사처벌 대상이 돼 형사 공탁은 교통사고 처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공탁은 재판 과정에서 선처를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난 2011년 9월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지면서 피해자가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 가해자는 공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난해 보복 범죄 우려로 범죄신고자 등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이 개정돼 공탁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문제는 합의금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저소득층에게 타격이 크다는 점이다. 합의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실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다. 이 씨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교통사고로 스물세 살짜리에게 징역을 살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사건번호로만 공탁할 수 있도록 공탁규칙 개정안 입법을 예고해 지난해 7월 6일 시행하려고 했으나 시행 전 사건번호만 있으면 아무나 돈을 찾아갈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발견돼 규칙이 아닌 법 자체를 개정하자는 쪽으로 선회됐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개인정보 없이도 공탁할 수 있도록 법안이 추진됐으나 아직 처리가 안 됐다. 특히 저소득층 공탁 문의가 많아 현행법 조정이 불가피하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들도 공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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