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어둠을 부리로 쪼아대는 새들이 야트막한 잠을 깨웠다. 매미는 잘 차린 햇살을 일꾼처럼 퍼먹었는지 아침부터 고요를 갈아엎기 시작했다. 올여름은 다른 어느 해보다 참으로 혹독하다. 일을 하려고 움직이면 아이 하나가 등에 매달린 것처럼 몸이 무겁고 더디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방치하거나 뒤로 미룰 수도 없다. 한 발짝 현관문을 나서면 삽시간에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힌다.
7월 말에 봉사활동으로 전국에서 대구에 모인 RCY 초'중'고교생 단원 중 경남 학생 30여 명을 인솔하여 체험학습을 한 일이 있다. 첫 번째 장소는 고령 대가야박물관이었다. 전에 두어 번 찾아왔을 때는 박물관과 고분을 둘러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고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학생들은 순장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의문스러웠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굳건한 믿음 아래 왕의 무덤 안에 지상에서와 같이 그를 받들어 모실 백성들을 껴묻었다는 사실은 현대 인권존중 사회와 비교하면 천인공노할 노릇이다. 거기다 순장자로 뽑힌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왕이 살아서 권세를 누릴 때를 재현하는 내세므로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들의 선발 조건은 최고로 순결하고 성실하며 복종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선택되는 일을 정당화해야 했으므로 가문의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세뇌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뽑혀온 사람들은 죽은 왕과 함께 껴묻히는 일을 눈앞에 두고 산 채로 순순히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옴츠러들고 슬픔과 전율을 느끼며 도망치고 싶은 생각과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순장자들의 주검을 분석한 결과 머리에 둔기를 맞았거나 묶인 흔적이 발견된다고 하니 말이다. 지금은 평화롭고 너그러워 보이는 능선이지만 저승길에 동행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살의를 생각하니 지하왕국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호모사피엔스이지만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불운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이었다. 따라온 학생들이 대가야의 역사적 사실을 감정이입 없이 학습하는 것보다 인간이 존중되어야 하는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대가야박물관을 나와 염색 체험장으로 갔다. 하얀 손수건 중앙에 나무젓가락을 넣고 몇 바퀴 돌린 후 고무줄로 묶었다. 그리고 쪽물에 담갔다가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으니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났다. 한가로이 서 있는 장대를 향해 걸어갔다. 느슨한 빨랫줄에 장미꽃 손수건을 널었다. 손수건이 잘 마르자 고분에서 울컥했던 마음도 닦고 흐르는 땀도 닦았다. 그릇된 문화가 쪽물에 담겨 푸르게 헹구어진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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