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DC코믹스 영화들 흥행부진 왜?

배트맨도 수퍼맨도 힘 못써

'배트맨 대 슈퍼맨'에 이어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소위 'DC코믹스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줄줄이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꽤 그럴싸한 흥행 성과를 올린 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그 외 국가에서 참패했으며 미국 내에서도 평가는 형편없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빅히트시키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블사의 질주와 상반된다. 미국 내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두 개 코믹스 회사 캐릭터들이 진영을 나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이미 대세는 마블 쪽으로 기울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후 슈퍼맨 단독 영화를 내놓으며 또다시 재기를 노리는 DC코믹스. 하지만 연이은 실패에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마블에 밀리고 있는 DC 계열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DC코믹스의 반격, 연이은 부진

앞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미국의 공신력 있는 영화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20%대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의 '신선도'를 기록했다. 이 사이트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에 신선도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20% 정도의 수준이라면 사실상 혹평 일색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지적받은 부분은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방식의 진부함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 높은 캐릭터, 거기에 할리퀸 등 매력적인 인물을 추가로 내세우고도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져 영화를 망쳤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배트맨 대 슈퍼맨'은 북미권에서 3억달러 중반, 그리고 해외에서도 5억달러가 훌쩍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며 9억달러에 상당하는 수준의 돈을 벌어들였다. 물론, 예상했던 수익의 3분의 2 정도에도 못 미치는 결과지만 쏟아진 혹평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친정'인 북미 지역 관객의 '내리사랑'에 따라 거둬들인 성과다. 단, 한국 내에서는 총 관객 수 200만 명을 겨우 넘기는 저조한 기록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동 시기에 개봉돼 무려 860만 명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마블사의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비교되는 수치다.

이후 DC가 내놓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개봉 후 북미지역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이 기간 동안 흥행 수익도 5억7천만달러에 달했다. 최종 수익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혹평에 시달린 것과 달리 역시 '친정' 관객의 사랑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줄곧 비난 여론에 휩싸였으며 4주 차에 이르기까지 180만 명에 불과한 관객 수로 고전했다. 천문학적 액수의 제작비와 세계적으로 기대를 모으던 론칭 당시 분위기에 비해 초라한 결과다.

부실한 내러티브에 캐릭터까지 침몰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슈퍼맨과 배트맨 등 기존의 유명 캐릭터를 제외하고 DC 계열의 악역들을 전면에 내세워 '악당이 더 나쁜 놈들을 응징한다'는 설정으로, 'DC의 다른 면모'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영화다. 할리우드 톱스타 윌 스미스가 데드 샷 역을 맡았으며, 마고 로비가 '배트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악역 조커의 여자친구 할리 퀸을 연기했다. 극 중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할리 퀸 외에도 전반적으로 캐릭터 설정은 꽤 봐줄 만했던 게 사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진부한 전개로 집중도를 떨어트렸다. 슈퍼히어로물의 팬들이 열광할 만한 악역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아 그들의 개인사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춘 전반부는 좋았다. 하지만 이들이 시너지를 내야 하는 중후반부에 이르자 이야기는 단조롭게 흘러가고 캐릭터 역시 이 분위기를 따라 평면적으로 변한다. 지상 최고라고 할 만한 악당들이 모였는데도 뜬금없는 우정과 가족애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1990년대를 전후해 수없이 등장했던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흥행 코드를 따라가며 'DC는 원래 진부해요'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를 범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인이 궁금해할 만한 슈퍼히어로 간의 충돌을 그려 호기심을 자아내고도 촘촘하지 못한 내러티브로 몰입을 방해했다. 두 캐릭터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키워나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격돌하게 되는 이유의 타당성에 대한 설득력이 약해 보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를 쓰며 내러티브를 전개시켰고, 향후 DC 캐릭터들의 모임인 '저스티스 리그'를 성사시키기 위해 기를 쓰며 이들을 화해시켜 손잡게 만들고 '절대 악당'에 맞서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배트맨과 슈퍼맨이란 두 캐릭터의 매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시대에 뒤처진 진부한 세계관 큰 문제

이처럼 DC코믹스 계열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매번 '진부하다'는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문제가 됐다. 분위기는 지독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진지하기만 하고 캐릭터는 괴팍한 노인네처럼 고집불통이다. 적당한 유머에 섹시미까지 갖춘 캐릭터, 여기에 트렌드까지 반영해 호응도를 높이는 마블사의 작품과 정확히 상반된 설정이다.

최근 10여 년에 걸쳐 DC가 내놓은 최대 히트작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한 '다크 나이트' 시리즈였다.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세 편의 시리즈는 그동안 코믹스나 이를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낸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진중한 세계를 만들어내 평단과 대중을 놀라게 만들었다. 배트맨 캐릭터의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며, 그가 어둠 속에 숨어 영웅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논리적으로 보여줬다. 밀도 있는 액션 신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솜씨 역시 상당했던, 영화사에 남을 수작이었다.

문제는 이후 DC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다크 나이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크 나이트'가 만들어둔 어둡고 심각한 세계에 영웅들을 투입하고 이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포장하려 노력하지만, 막상 '다크 나이트' 수준의 완성도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물로 불협화음만 만들어낸다.

그나마 슈퍼맨을 리부트하기 위해 만든 '맨 오브 스틸'은 '다크 나이트'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DC가 이 시기를 기준으로 마블처럼 각기 다른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내놓고 그들의 세계관을 알렸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DC(정확히 말해 DC 계열 슈퍼히어로의 판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회사는 워너브라더스다)는 마블의 '어벤져스'처럼 한시라도 빨리 '저스티스 리그'를 현실화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빚어진 오류가 '배트맨 대 슈퍼맨', 그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이 과정에서 슈퍼맨은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판단력은 떨어지는, 단순한 캐릭터로 전락했다. '다크 나이트'에서 매력지수를 최대로 끌어올렸던 배트맨 역시 고집불통 중년 아저씨로 바뀌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DC가 열을 올리고 있는 슈퍼맨과 배트맨 단일 주연 영화들의 성공 역시 쉽게 점치기 힘들다. 어차피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니라면 누구도 '다크 나이트'의 완성도를 재현할 수 없다. 트렌드를 읽고 시대착오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좀 더 젊어지려 노력하는 게 지금 DC가 처한 문제점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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