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약 한 달 앞두고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주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선 '민원인의 날'을 열어 민원을 적극적으로 듣고 해결해야 하지만 우연찮은 실수로 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공익 목적의 민원 전달은 법 위반 제외 대상이라는 조항이 있어도 공익의 범주가 애매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경북의 한 초선 의원실은 민원인의 날 행사 계획을 짜다가 김영란법 시행(9월 28일) 이후로 보류했다. 의원실 내부에서 처리 가능한 민원과 방식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여론이 우세해서다. 해당 의원실 측은 "민원과 부정 청탁의 경계가 애매하다. 서울과 수도권 의원실에서도 민원인의 날 재검토에 들어간 곳이 많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공익성의 범주다. 김영란법 제5조 2항의 3에 따라 선출직 공직자인 국회의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부정 청탁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 몇십 명만 혜택을 보는 도로 개설 요청이 공익성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권익위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법에 명시된 '부정청탁 신고 의무'도 민감한 사항이다. 법에 따라 국회의원이 부정청탁을 받으면 소속 기관, 권익위 등에 신고해야 하는데 민원과 부정 청탁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경우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2010년 여야 의원 중 처음으로 민원인의 날을 시작해 '원조'로 불리는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도 걱정이 많다. 지난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김영란법 입법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법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법의 모호한 부분이 명확해질 때까지 민원인의 날 행사를 잠정 중단하는 것까지 고려 중이다.
김 의원은 25일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집 앞에 전봇대를 뽑아달라는 민원이 들어오면 관계 부처인 산업자원통상부, 한국전력에 해결해 달라고 직접 부탁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산자부를 통해 한전에 공문을 보내고 '살펴봐 달라'는 식으로 전달 방법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는 (관련 기관이) 질릴 정도로 읍소했는데 법이 시행되면 열심히 하는 행위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선출직 공직자가 민원 해결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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