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이상화 시인 유품을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했다니

일제 저항시인 이상화의 유품 1만 점이 통째로 도난당했다가 3년여 만에 회복됐다. 도난당한 유품은 대구시 중구 서성로 이상화 시인의 백부인 이일우 선생 고택에 보관해오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및 문단의 활동상이 담긴 소중한 역사 자료들이다. 뒤늦게라도 되찾았기에 망정이지 귀중한 자료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뻔했다.

유품 도난에는 허술한 관리가 한몫을 했다. 해당 고택은 7세에 아버지를 여읜 이상화 시인과 형제들이 어린 시절 자란 곳이다. 시인이 자란 고택에 유품은 그대로 남았지만 별도의 관리나 관리인 없이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지난 45년간 가사 도우미로 일한 도모 할머니(85)만이 홀로 지켰다. 이곳을 드나들던 하모 씨가 유품의 가치를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하 씨는 할머니에게 "쓸모없는 서적이나 폐지류를 팔라"고 꼬드겼다. 문화재의 가치를 모른 할머니는 2013년 3월 고작 260만원을 받고 이상화 시인과 형제가 쓴 편지 3천307점과 엽서 1천855점 등을 비롯해 각종 물건 1만1천263점을 넘겼다. 하 씨는 고택 앞에 승합차를 대 놓고선 유품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6개월 뒤 고미술상 조모 씨에게 3천600여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관리가 허술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범행은 3년이 지나서야 들통이 났다. 이상화 시인 유족들이 기념관 설립을 준비하며 전시할 유품을 찾던 중 우연히 창고에 있던 유품 일부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유족들이 수소문 끝에 조 씨를 찾아내 반환을 요구했지만 조 씨는 "10억원을 주면 돌려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이 나서 도난당한 유품 전량을 회수했다.

유품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 때 우리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자료다. 이상화 시인의 항일운동 정신이 담겨 있을 터다. 그럼에도 유품은 전문가의 감정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 가치를 정확히 알 길 없다.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도 되지 않았다. 도난당한 자료들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회복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귀중한 자료는 민간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두 번 다시 화를 겪지 않도록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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