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마을/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김범수 옮김/황소자리 펴냄
고령화, 저출산, 저성장, 젊은 층 일자리 부족, 중앙집중화, 지역 공동체 위기는 우리 현실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앞서 저성장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오래전부터 겪고 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정치와 행정, 사회 리더들은 '호소'할 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지방부터 소멸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일본에 희한한 마을이 있다.
인구 79만 명의 소도시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지방자치단체 후쿠이현은 모든 지표에서 대도시를 압도한다. 노동자 가구 실수입 전국 1위,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맞벌이 비율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 명당 서점 숫자 1위, 노인과 아동 빈곤율 최저, 실업률 최저, 자기 집 소유율 전국 3위, 행복도 평가는 10년 넘게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1위 제품 및 기술이 14개이고 일본 내 1위는 51개나 된다. 대체 이 작은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책 '이토록 멋진 마을'은 인구 79만 명의 작은 자치단체 후쿠이현이 일궈낸 기적 같은 자력갱생의 모델을 추적, 탐구한 심층 리포트다. 후쿠이의 역사와 일상, 행정과 경제, 독특한 교육 방식, 토착민과 외지인의 소통, 노인과 젊은 세대가 함께 만들어낸 21세기형 도시 생태계를 담고 있다.
후쿠이현은 일본 혼슈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고야 북쪽의 작은 도시다. 후쿠이가 자력갱생한 배경에는 후쿠이만의 교육 방식이 있다. 이 지역은 중앙정부의 방침에 역행하면서까지 주입식 교육 방침을 거부했다. 오래전부터 후쿠이는 지식을 습득하는 대신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다. 사고 과정을 가시화해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글로 써내도록 하는 수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학생들이 연구해서 그룹 발표를 하면 선생님이 묻는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지?" "정말이야?" 그러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발표 내용을 선생님께 증명하기 위해 책을 펴고, 자료집을 뒤지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또 중학교 1학년생들의 수학교실에는 2학년생과 3학년생이 수업에 사용하는 그래프나 공식이 붙어 있다. 지금 당장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하는 공부가 어떤 단계에 있으며, 향후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지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과정을 짐작하면 이해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도시와 또 다른 점은 후쿠이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평생 현역이라는 점,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다. 마을 전체가 나서서 육아를 하고, 일상 자체가 학교 역할을 한다.
가령, 회사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사원들에게 가르침과 동시에 왜, 누구를 위해 그 물건을 만드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 물건을 쓰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작업할 때 품질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밖에 없다. 기업과 대학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획기적인 상품과 사업 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사원들은 소속 기업의 틀을 넘어 다른 기업의 사원들과 협력해 혁신을 이끈다.
오랜 세월 빈곤과 실패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믿을 것은 사람밖에 없는 마을,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했다. 이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대화가 있다.
"섬유와 칠기, 안경은 사양산업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걸핏하면 사양, 사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무엇이, 왜 사양입니까? 모든 산업이 첨단을 향해 진행하는 속성상 이전 것은 언제나 사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 전반적으로 볼 때 사양산업이라도 거듭되는 혁신을 통해 살아남은 기업은 오히려 강해집니다."
28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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