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인지 추미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된 8월 27일은 광주에서 판사로 재임하던 중 김대중(DJ)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영입 제안을 받아 입당원서를 쓴 1995년 8월 27일로부터 꼭 21년 되는 날이기도 하다. 추 의원은 이날 전당대회 정견발표에서 이러한 사연을 소개하며 "오늘은 운명 같은 날"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호남이 지지기반인 민주당에서 대구 출신의 촉망받는 신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추 대표를 정계에 입문시킨 DJ는 그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출신)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일들이 추 대표를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로 부르는 이유다.
37세이던 1995년 DJ의 전문가 수혈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7년 대선 때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면서 높은 대중성에 더해 강한 돌파력, 추진력을 보여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추 대표가 정계에 입문했던 시절은 지금보다 지역주의가 더욱 심했던 시절이라 영호남을 모두 아우르는 정체성은 그의 정치적 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 헌정사상 여성 최초로 지역구 5선의 금자탑을 쌓는 과정에서 어느 때는 대구의 딸이, 어느 순간에는 호남의 며느리가 도움이 됐다.
추 대표는 1958년 달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차녀)로 태어나 구남여중을 거쳐 1977년 경북여고를 졸업했다.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 등이 추 대표의 동기생이다.
한양대 법대에 진학한 추 대표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3년 뒤 대학 동기인 서성환(현 변호사)과 결혼해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 남편과는 캠퍼스 커플이었으며, 결혼 전까지 7년간 연애했다. 추 대표는 춘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법'전주지법'광주고법 등에서 판사직을 역임했다.
추 대표는 국회의원이 된 후 여고 동창생들과의 자리에도 열심히 참석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했다. 아울러 정치적 도전과 시련을 겪을 때도 고향에서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다.
여전히 구수한 사투리를 쓰고 있는 추 대표는 지난 12일 대구 북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더민주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낮에 어느 당원께서 장롱에 보관해 오던 20년도 지난 사진 속 제 모습을 가리키며 '야 추미애 니 참 고왔데이!'라고 하시는데 가슴이 찡했다"며 "대구의 세탁소집 둘째 딸 추미애 이제 친정 오니까 자랑스럽고 든든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특히 추 대표는 이날 "우리 대구의 자랑인 김부겸 의원님도 이 여동생 믿고 대선을 향해서 당당하게 고지에 오를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약속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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