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체에서 겪고 있는 재선충 공포는 우리보다 10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이 먼저 경험했다. 일본은 초기 방제에 실패하면서 국토 대부분 숲으로 재선충이 확산했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우리도 일본의 실패 사례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북도 해외산림협력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일본 사례를 연구한 산림조합중앙회 대구경북본부의 연구 결과물을 중심으로 일본이 걸어왔던 길을 들여다봤다.
◆1905년, 재선충 일본을 습격
일본에서는 1905년 첫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남부 나가사키 주변에서 그해 가을 다수의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
일본 학계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전파로 인해 발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구도시인 규슈 나가사키가 미국과 교류가 있던 지역임을 감안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파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규슈 후쿠오카현에서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해가 발생했고, 몇 년이 지나자 가고시마현 해안에서 집단 고사가 보고됐다. 1914년엔 혼슈로 번져 효고현 아코시의 노송에서 피해가 일어났고 인근 아이오이시를 비롯해 1920년대 후반까지 규슈와 혼슈 남부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 전역으로 순식간에 확산했다.
일본에서 재선충이 급속히 확산하게 된 것은 원인 규명이 안 된 탓이다. 일본 사람들은 소나무 고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소나무 식충'이라고 부를 뿐 무엇이 원인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일본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원인이었다.
재선충에 의한 소나무 피해 메커니즘이 일본에 알려진 것은 최초 발생 뒤 무려 66년이나 지난 1971년이었다. 이때가 되어서야 소나무가 죽게 된 원인이 소나무재선충이라는 것이 규명됐다. 재선충의 매개충은 솔수염하늘소라는 사실은 그 이듬해가 되어서야 공식 규명됐다.
◆일본 전 국토를 덮친 재선충
일본 정부가 소나무가 죽어간 원인을 밝혀냈지만 피해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였다.
나가사키에서 재선충에 의한 첫 피해가 발생한 뒤 재선충은 북진을 거듭해 홋카이도 바로 아래인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까지 치고 올라갔다. 사실상 전 국토에서 피해가 나타난 것이다.
1979년에는 일본 전역에서 모두 243만㎡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말라 죽어 사상 최대의 피해를 내는 등 원인이 밝혀진 뒤에도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 전체 산림면적(2천515만㏊)의 7%(176만㏊)에 달했던 소나무 면적은 최근엔 종전의 절반도 채 안 되는 3%(75만㏊)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체 소나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재선충병으로 고사해버린 것이다.
피해 역사가 오래된 일본 서남부에서는 송림이 격감하거나 완전 궤멸된 곳이 곳곳에서 생겨났고 자연적으로 새로이 형성된 송림에서도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다시 발생하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항공 방제·벌목·훈증 효과 못봐
일본은 재선충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항공 방제와 벌목, 훈증, 소각 등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방법의 예방'구제책을 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원인 규명이 늦어진 여파로 인해 초기 방제시기를 놓친 탓이었다.
초기 방제에 실패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소나무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은 확산방지를 위해 약제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한편, 살충제 수간주입, 임업적 방제(매개충 산란대상목 제거), 잠재감염목 색출 및 구제 등을 하고 있다. 유인물질을 활용한 포획 및 살충 방법도 쓰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재선충이 장기적으로 갈 것으로 예상하고 1976년부터는 저항성 소나무의 육종 및 보급에 나섰다. 2년간에 걸쳐 극심한 피해가 발생한 14개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살아남은 후보목 총 9만7천여 본을 선발, 1978년부터 8년간에 걸쳐 육종사업을 폈다. 지금도 각 지역별로 그 지역에 자생하는 소나무류에서 저항성 품종을 육종, 일반에 보급하고 있으며 시즈오카현에서는 2014년 1년 동안에만 10만 본의 묘목이 공급됐다.
◆완전방제 정책 전환, 선택과 집중으로
오랜 노력을 해왔지만 일본에서의 재선충은 '박멸'되지 않았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고 이미 전국적 확산이 이뤄져 피해량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결국 꼭 지켜야 할 송림마저 지키지 못해 전체를 포기한 지역이 속출하자 일본 정부는 반드시 보호해야만 하는 곳만 선별적으로 선택해 소나무림을 보존하는 정책 시행으로 방향을 변경했다.
예를 들어 국립공원, 해송 군락지, 고궁 및 문화재 주변 소나무 등 반드시 지켜야 할 송림을 선정해 방제노력을 집중하는 한편, 다른 송림은 자치단체나 민간 등의 자율방제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국비보조율 차등 지원 등) 전략을 도입했다.
꼭 지켜야 할 중요 송림을 확실히 방어하기 위해 일본은 폭 2㎞ 정도의 방제대를 구축, 다른 수종으로 바꾸거나 철저한 예찰 및 구제작업을 하고 있다.
피해 확산 지역 최북단인 아오모리현에서는 2006년부터 방제대를 설치, 구역 내 소나무류를 모두 벌채하고 다른 수종으로 바꿨고 경계지역 송림에 대한 철저한 예찰활동을 했다. 그 결과, 최근까지 2차례에 걸친 소규모 발생이 있었을 뿐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다.
남부 이와테현에서도 소나무류를 벌채하지 않고 있지만 철저한 예찰과 방제를 통해 피해선단지의 북상을 저지하고 있다. 일본의 최초 피해 발생지 규슈에서도 방제대 구축을 통해 해안 송림의 피해를 막는 데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일본 정부는 분석했다.
◆우리는 어떤 방제정책을 가져야 하나?
경북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일본의 전문가들은 "경북도 이미 초기단계를 지나 피해 확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현재의 100% 완전방제 정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방문, 연구용역을 수행했던 산림조합중앙회 대구경북본부 측은 "일본 사례를 볼 때 우리도 100% 방제를 이행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방제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00% 방제 목표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을 전환해 지켜야 할 송림은 집중방제를 하되, 주변 송림 및 일반 송림은 특정 조치(모두 베기, 수종 갱신, 자율방제) 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 조남월 환경산림자원국장은 "다양한 방제 정책을 수립 중이다. 일본 등 외국 사례도 모두 파악, 향후 정책 수립에 참고하고 있으며 행정기관의 힘만이 아니라 도민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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