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래도 공무원 생활을 20년 넘게 했는데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퇴직하고 나니까 전화 한 통 없어. 정말 잔인한 세상이야. 지금 경비원 자리라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버글거려도 정승이 죽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잖아요, 자리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해요."
주변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의 하소연을 심심찮게 듣는다.
한창 평탄대로를 걷다가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지듯 하루아침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는 충격적인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극심한 배신감, 상실감을 토로한다. 세상이 갑자기 자기를 잊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자신이 세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자본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자신을 팽시킬 줄 몰랐다고?
50대 중반에 주류 세상에서 놀다가 튕겨 나온 이들이 그 나름대로 인생 이모작 준비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대비는 어느 정도 했다 치더라도 너무나 힘들어하는 건 주변부로 밀려나는 소외 현상이다. 퇴직에 대한 정신적 대비는 아무리 해도 모자라,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는 비참함을 처절하게 느낀다는 거다.
"받아들여야지. 나라는 인간이 좋아서 술 먹고 골프 치고 같이 여행 간 게 아니라는 걸, 내 지위가 필요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니 당연히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데, 휴대폰에 저장된 수백 명의 전화번호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미리 알아차리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
"잘 생각하셨어요. 이제까지 정신없이 벌어야 하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인생 별거 없잖아요? 갑자기 하늘이 부르면 다 두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인데, 움켜쥐고 영원히 자기 것인 양 주인 행세를 해봐도 해변가 모래성 쌓던 아이들처럼 다 내버려두고 가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쉽지 않아. 이 속에 있으면 그런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거야. 하다못해 벌기만 하다가 한 번 잘 써 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려. 많이 가진 사람들도 실제로는 얼마나 궁핍한 삶을 사는데, 벌기만 하는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많이 벌어서 나중에 베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나누고 진짜 사람 관계를 만들어 놔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중심에 있든 주변에 있든 무너지지 않을 사랑의 인맥 같은 거 말이에요."
그래, 이건 확실하다. 모두가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먼저 소유의 관계를 벗어나 존재의 관계를 맺어야만 소외당하지 않는 거라는 걸, 오늘도 정신없이 살겠지만 이건 알고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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