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항증 대한광복회 경북도지부장, 안동서 국치일 추념식 거행

일제에 당한 오욕과 통한의 경술국치 "국치추념일로 정하자"

29일 경술국치 106주년 추념식에서 만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 광복회 경북도지부장은 경술국치일을 국치추념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재진 기자
29일 경술국치 106주년 추념식에서 만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 광복회 경북도지부장은 경술국치일을 국치추념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재진 기자

1910년 8월 22일 오후 1시.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興福軒)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일제 데라우치 통감이 사전에 건네준 '한일병합조약안'을 체결하는 데 필요한 '전권위임에 관한 조서'에 순종의 재가를 받아내는 자리였다.

최고 통치자가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겨주는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이완용은 순종에게서 받아낸 전권위임장으로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1910년 8월 29일. 순종은 이날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제에 넘겨주게 됐다고 발표했다. 순종은 조선 500년 사직을 이어갈 막중한 책임을 자신의 '부덕'을 탓하며 일제에 넘겨줬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민족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반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이날로부터 106년이 흐른 29일 안동문화의 거리에는 경북지역 독립운동가 후손 등 300여 명이 함께해 추념식을 가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1910년 경술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오욕과 통한의 역사를 잊지 말 것을 다짐했다.

이날 추념식은 추념사와 태극기 달기 캠페인 등으로 마련됐다. 대한광복회 경상북도지부는 이번 행사를 위해 '경술국치 잊지 말고, 민족정기 되살리자'는 현수막을 내걸고, '우리 아픈 역사의 경술국치'와 '항일 독립운동의 위대한 유산 대한민국의 탄생' 등 소책자 2종을 배포해 역사 바로 알기에 나섰다.

106년 전 나라를 빼앗기자 전국에서 순국이 줄을 이었다. 1910년에만 전국에서 70여 명의 선비들이 목숨을 끊었다. 향산 이만도 선생 등 안동 사람들이 순국의 물결을 이끌어냈다.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 선생 등은 눈 내리는 엄동설한에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행렬을 이끌고 만주벌판으로 떠났다. 안동 사람들은 나라 잃음에 목숨을 끊거나 만주로 향해 항일투쟁에 나서는 등 저마다 선비로서 의를 실천했다.

이항증(78) 대한광복회 경북도지부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알 때까지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 8월 29일을 국가가 국치추념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지사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그는 "8월 29일은 우리의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가장 비참하고 절통한 치욕의 날"이라며 "그런 만큼 추념일로 지정해 후세들에게 국치로 일제에게 당한 우리 민족의 고초와 박해, 경제적 수탈, 문화적 피해를 결코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항증 지부장은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국내를 비롯해 중국, 연해주, 미국 등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추념가를 부르는 등 이날을 잊지 않고 상기하는 행사를 가졌다"며 "일제강점기에도 잊지 않고 비밀리에 열리던 추념 행사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친일파의 방해로 흐지부지됐고, 언제부턴가 달력에서도 국치일 표기가 사라졌다"고 애통해했다.

중단된 국치일 추념 행사는 1996년부터 다시 한국독립유공자유족회가 매년 주관, 개최해오다 경술국치 100주년인 지난 2000년부터 대한광복회와 독립유공자유족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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