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현실동화-해피엔딩

오서은.
오서은.

어릴 때부터 동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머니가 틀어주시는 디즈니 만화 속에 각색된 동화 속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보며 오랜 시간 내게도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환상 속에서 자랐습니다. 이 아름다운 동화들은 우리들 모두에게 약간의 빚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뇌 깊숙한 곳에서부터 동화의 해피엔딩이 아니면 잘못된 삶인 것처럼 느끼도록 길러졌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결말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쉽게 쓰이고 쉽게 지워졌습니다.

젊음만으로 사랑하기엔 현실은 너무나 날카롭고 뾰족합니다. 누군가에게 깊이 감정을 쏟아내기엔 자신이 비워질까 무섭고, 맹목적인 사랑을 노래하기엔 상대를 알지 못 합니다. 아이일 때는 그렇게 희망과 사랑을 말하던 책들이 이제는 세상 모든 것들을 쟁취하고 다른 사람을 재고 이용하라고 가르칩니다. 물질로 채워진 삶 속에서 사랑은 너무 가볍고 쉽게 흔들리고,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말은 가장 터무니없는 거짓말의 대명사로 이젠 사전 안에만 박제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줄 알았던 동화에서 자신이 조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자신에게 준비된 엔딩이 행복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 마침표를 꼭 찍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몇 주 동안 비관적이고 우울한 사랑으로 얼룩진 동화를 쓰면서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아는 사랑의 민낯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동화가 아니라 삼류 드라마로 만들 수밖에 없는 내 동화 속의 진짜 주인공들. 포장된 화려한 공주와 왕자들 뒤에 현실에서는 버려지고 찢긴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당신의 영혼에 귀 기울이고 있나요? 당신의 동화는 진짜 해피엔딩인가요?"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는 먼지와 물거품이 되고 라푼젤은 탐스러웠던 머리카락을 자릅니다. 엘리스는 길을 잃고 야수를 사랑한 빗자루는 짝사랑에 무너집니다. 엄지공주는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죠. 이제는 상처받은 나의 주인공들을 위해 왕자의 입맞춤과 해피엔딩으로 포장하는 동화 대신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이야기를 써주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적은 늘 동화처럼 달콤하지만 영혼의 빈 곳을 채우는 일은 꼭 아름답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아픈 이야기가 때로는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무엇도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기 전에는 진짜를 찾아낼 수 없으니까요.

나는 이제 동화에서 탈출하려 합니다. 당신은 어릴 적 당신을 가두었던 해피엔딩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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