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살 2인분 4만4천 원 얻어먹었으니, 현행 법 위반(식사 3만 원 이상 접대 처벌)입니다."
이달 28일 이후로 란파라치(김영란법 파파라치)의 악의적인 신고로 경찰서에 가서 이런 조사를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된다. 예상되는 답변은 "그냥 순수하게 식사 한번 했는데, 처벌받아야 하나요?". 이 정도다. 뒤틀린 심사에 때를 쓰며 고성이 오갈 수도 있다.
김영란법 위반 1호는 누가 어떤 일로, 벌금은 얼마 나올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곳곳에서 김영란법을 연구하고 예방 및 대응책을 찾느라 분주하다.
한 정부 출연기관에서는 올 가을에 기자를 동반한 해외 행사를 계획중인데, 김영란법 위반으로 자칫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우려해 출입기자들이 아무도 가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수억원 원이 소요되는 애국적 성격의 공익적 행사지만 이를 널리 보도하기도 쉽지 않으니 해당기관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호재도 있다. 공공기관 위주로 공개입찰을 통해 물량을 수주하는 지역의 한 기업은 '김영란법'이 생겨서 더 좋다고 했다. 이 기업의 대표이사는 사석에서 "어차피 크게 주고받는 로비는 10년 넘게 단 한번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공공기관,언론 등에 소소하게 접대할 필요가 없으니, 더 좋지요."라고 덧붙였다. 듣고보니 그럴싸 했다.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을 상상하면 더 아찔하다. 수년 전에 실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정치부 기자들과 식사를 마칠 무렵,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5만 원씩 나눠줬다. 식당을 나가면서 각자 이 돈으로 계산을 했는데, 기분은 영 개운치 않았다.
앞으로 골프접대 역시 며칠 전 전달, 라운딩 도중 지급, 사후정산 등의 편법이 동원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배신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를 어떻게 적발해 내겠는가. 접대받는 사람은 각자 카드로 결제하고, 접대하는 사람은 그 비용만큼 현금으로 주는 방식이 주로 이용될텐데 어쩌면 김영란법 때문에 구차하거나 저열한 방법으로 법을 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양산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기우(杞憂)일까.
김영란법은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일명 '부정 청탁금지법'이다. 대한민국이 더 투명하고, 청렴해지자는 것이 법 취지다. 100% 공감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정서를 생각해볼 때 부작용도 우려된다. 곳곳에서 어색한 분위기도 많이 연상된다. 공무원과 민원인이, 교사와 학부모가, 기자와 홍보직원이 함께 술밥을 먹었다면 이제는 각자 계산하는 풍경이 심심찮게 나올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습처럼 박혀있는 관행들이 김영란법과 부딪치며, 법 취지와는 별개로 부작용도 속출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한층 더 청렴하게 만들고자하는 김영란법이 법 취지대로 잘 정착된다면 대환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을 냉정히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은것 같다. 정작 큰 도둑은 배임'횡령'사기'특혜'로비'청탁 등을 다 해먹고도 변호사 잘 써서 고작 징역 몇년 또는 몇 개월,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기 일쑤다. 반면 김영란법에 걸려든 작은 도둑은 소소하게 정을 나누려다 더 큰 처벌을 받게 된다. 김영란법이 진정 부정청탁금지법으로 자리잡아 청렴사회를 앞당기는 초석이 되려면, 이 법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얼마나 공평하게 적용될지도 지켜 볼 일이다.
먼 미래를 보면, 김영란법이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경제가 더욱 위축되거나, 각종 편법이 난무하게 되거나, 우리 사회가 더 살벌하고 척박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의 혼란을 줄이는 길은 정치인'법조인'기업인'공무원'교사'기자 뿐 아니라 전 국민의 청렴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렸다. 김영란법에 명시된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적 총화를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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