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말보다 강한 언어는 침묵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제 양성 과정은 대동소이합니다. 신학교에서는 7년 동안 공부를 하는데 거기에다가 군 복무 2년과 현장 체험 실습 1년을 더하면 말 그대로 10년 공부입니다. 신학교가 종합대학에 속해 있든 단과대학이든 상관없이 신학생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듭니다.

신학교 생활을 특징짓는 또 한 가지는 침묵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필요한 말만 하는 '소침묵'(小沈默)의 규율을 따릅니다. 주로 실내 활동 시간이 이에 해당됩니다. 말을 절제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여 사제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소침묵이 있다면 '대침묵'(大沈默)도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끝기도 시간부터 다음 날 아침식사 전까지의 시간에 해당하는 규율입니다. 시간으로 본다면 대침묵은 저녁 8시경에 시작하여 아침 8시경에 해제됩니다. 하루의 절반을 일절 대화가 금지되는 대침묵 중에 지내게 됩니다. 인터넷은 정해진 시간에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개인 휴대전화는 신학교에서는 아예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여럿이서 한 방에서 공동생활을 하더라도 이 규칙은 적용됩니다. 그렇게 7년을 살면 자연스럽게 침묵과 친구가 됩니다.

30여 년 전 학장 신부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학교 생활에서 대침묵 시간은 아주 중요합니다. 침묵 속에서 여러분은 내면을 정화하여 하느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가 있습니다. 또한 대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훗날 여러분이 사제가 되었을 때 고해성사의 비밀을 잘 지키게 해 주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신학교 생활에서 몸에 밴 침묵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연례피정은 참 고마운 시간입니다. 피정은 가톨릭 신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침묵 중에 기도와 묵상으로 지내는 시간을 말합니다. 신자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사목활동의 시간들도 사제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고요히 머무는 피정시간은 보약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말과 글의 홍수 속에 삽니다. 수많은 언론매체가 말과 글을 쏟아냅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든 손안의 단말기로 지구촌 곳곳의 소식을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말이 진실인지 어느 글이 거짓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주장합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도 난무합니다. 말을 잘못 하거나 글을 잘못 써서 설화(舌禍) 혹은 필화(筆禍)에 휘말리는 사람들도 종종 봅니다.

말을 제대로 하고 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250년쯤 전에 프랑스의 조셉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1716~1786) 신부는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한 안내서로 '침묵의 기술'(L'art de se taire)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말의 반대말로 보이는 침묵이 오히려 말을 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고, 나아가 침묵 자체가 언어보다 강한 힘을 가진 전달 수단이 된다고 역설합니다. 그의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떠버리가 "마음이 너그러운 스승을 발견해 제자로 삼아 달라 간청한다면, 비록 부족한 점이 눈에 띄어도 받아줄지 모른다. 단 그럴 경우 조건이 있을 텐데, 다른 학생들보다 두 배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입을 닫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말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제 입술의 문을 지켜주소서."(시편 1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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