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이청준 '눈길'

잡것이 다 알아뿌럿네

이청준 '눈길'

그런디 이것만은 네가 잘못 안 것 같구나. 그때 내가 뒷산 잿등에서 동네를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일 말이다. 그건 내가 갈 데가 없어 그랬던 건 아니란다.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침 햇살이 활짝 퍼져 들어 있는디, 눈에 덮인 그 우리 집 지붕까지도 햇살 때문에 볼 수가 없더구나. 더구나 동네에선 아침 짓는 연기가 한참인디, 그렇게 시린 눈을 해 갖고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 차마 어떻게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있더냐. 그놈의 말간 햇살이 부끄러워서 그럴 엄두가 안 생겨나더구나.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고자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라. (이청준의 중에서)

선생님, 마지막 편지입니다. 왜 글을 쓰는가를 다시 묻고 있는 , 나나 너의 천국이 아닌 , 영화 '밀양'의 원작인 , 마지막 작품집에 실린 등을 고민하다가 로 정했습니다. 선생님의 본질과 내면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선생님께 가슴으로 다가가게 된 계기를 만든 소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고향과 어머니는 선생님의 가장 남루한 바닥이기도 했지요.

'어머니!'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은 돌고 돌아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불과했다고 하면서, 글을 쓰는 힘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소설의 기둥은 어머니라고 고백한 것을 보았습니다. 1990년대 어느 날, 교과서에서 을 만났더랬지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이들과 소설을 읽기만 했습니다. 먼저 조용히 묵독을 하고 두 번째는 부분을 나누어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세 번째는 가슴에 남는 부분을 낭독하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이란 소설은 그렇게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업하는 내내 나도 아팠습니다.

그 마음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장흥을 찾았습니다. '청준이가 유명하긴 한가 보다. 경상도에서까지 학생들이 찾아오니.' 타지에서 불쑥 방문한 수십 명의 방문객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도회지 중학교로 유학 가기 전날 어머니와 게를 잡았다지요.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아들을 맡아줄 친척집에 빈손으로 보낼 순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이튿날 친척집에 닿자 게들은 모두 상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겼습니다. 친척 누님이 코를 막고 게 자루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선생님은 자기가 버려진 듯 마음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분명 현재는 가난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병마와 씨름하시면서도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고향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묘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가난과는 전혀 다른 참혹한 마음의 가난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멋진 베레모를 쓰시고 담배를 물고 여기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파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쓰다듬어 주시길, 그리고 거기서 행복하시길. 그리고 더 많이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서 언젠가는 선생님께 듣고 싶은 말. '잡것이 다 알아뿌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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