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군수품 이어 군수 정비까지 줄줄 샌 국방비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허위 세금계산서 등을 이용해 거액의 국방 예산을 편취한 정비업체 대표 등이 적발됐다. 대구지검은 군 당국과 군수품 정비 계약을 체결한 뒤 20억원 상당의 정비대금을 가로챈 군수품 정비업체 K사 전'현직 대표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의 행위는 국방 장비 정비 부실로 고스란히 이어져 정비한 군수 장비 중 상당수가 성능 불량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유사시 군의 적 대응 능력엔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이들의 범행은 지난 2008년부터 계속됐지만 군은 올 2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까지 까마득히 몰랐다. 이들이 국방 예산을 축낸 방법은 다양했다. K사는 포병 사거리 관측 장비인 휴대용 레이저 거리 측정기와 헬기용 아군 식별 장치인 무선주파수용 증폭기 정비 계약을 체결한 뒤 부품을 교체한 것처럼 속여 정비대금을 받아 챙겼다. 노무비를 더 타내기 위해 실제 투입된 작업 시간을 부풀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군수 정비와 무관한 세정제 등 물품을 구입한 후 정비에 필요한 물품을 산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가공의 세금계산서, 견적서 등이 사용됐지만 군은 밝혀내지 못했다. 군수 정비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다.

이런 비리가 군수품 성능 불량으로 이어진 것은 자명한 이치다. K사가 정비한 휴대용 레이저 거리 측정기 194대 가운데 34%인 66대가 성능 불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예 거리 측정이 불가능한 휴대용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19대나 됐다. 16대는 사거리가 오차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군은 이런 무용지물 장비를 들고 적에 맞설 뻔했다.

우리나라의 내년 국방 예산은 사상 처음 40조원을 넘어선다. 국가 예산의 10%를 넘는 금액이다. 국방비 규모로만 보면 세계 10위 수준이고 북한 국방비의 8배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방 능력이 국방 예산 순위에 버금갈지는 의문이다.

우리 군은 최신 함정에 불량 음파탐지기를 달았는가 하면, 공군 전투기 시동용 발전기 납품에도 비리가 개입할 정도로 군수 관리가 엉망이었다. 군수품 공급 비리에 이어 이번에 군수 정비 불량까지 드러났다. 국방 예산이 이렇게 줄줄 샌다면 세계 10위 예산에 걸맞은 군사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이 시간 또 어디에서 국방 예산이 축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방부는 40조 예산 한 푼 한 푼이 모두 국민의 혈세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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