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녹색의 반란

전북 익산 출생. 전 MBN 앵커
전북 익산 출생. 전 MBN 앵커

#1 "난 녹색이 제일 좋아." 다섯 살 아들은 그림을 그릴라치면 크레파스 중에서 항상 초록색을 먼저 뽑아 든다. 장난감을 고를 때도, 아침마다 옷장을 뒤지면서도 녹색을 찾는다. "왜 그렇게 녹색이 좋아?"라고 물으면 "그냥"이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이라는 아들의 말이 이해도 된다. 횡단보도 앞에서 다시 걸음을 허락하는 것도 녹색, 아픈 곳을 치료하고 낫게 해주는 병원의 십자가도 녹색, 친환경을 인증하는 마크에도 녹색, 싱그럽고 푸르른 자연도 녹색. 이미 녹색은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건강' '생명'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녹색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2 지난주엔 2박 3일간 나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북 남원에서 시작해 남해를 거쳐 통영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간 쌓인 고민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회색 빛깔의 도시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초록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싶었다. 지리산으로 대표되는 도시 남원에 도착해 추어탕 한 사발을 들이켜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도시 곡성에 들러 산천초목의 기운을 듬뿍 받았다. 폭염을 잘 견뎌낸 질긴 생명들의 녹음은 무척이나 푸르렀다. 서둘러 남해로 떠날 채비를 하는 나에게 친구는 고속도로 대신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라"고 일러줬다. 섬진강변은 특히 3, 4월이면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려 봄을 알리고 연이어 산수유꽃, 벚꽃까지 흐드러져 명실상부 '대한민국 5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봄꽃 내음에 취할 수 있는 기회는 비록 얻지 못했지만 굽이굽이 휘돌 때마다 펼쳐지는 반짝이는 은빛 물결을 감상하는 것만도 충분한 호사였다.

#3 통영은 5년 만이다. 그 사이 폭풍처럼 휘몰아친 조선업 불황 때문인지 분위기는 침체돼 있었다. 게다가 거제도에서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옆 동네인 통영마저 관광객들이 발길을 끊어버렸다. 생기를 잃은 마을엔 잿빛 기운이 감돌았다. 통영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바다 앞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앞이 탁 트여 파란 빛깔을 내는 남해 바다와 달리 호수 같은 통영의 바다는 나무들이 바닷물에 비쳐 희한하게도 투명한 초록빛을 띠었다. 밤이 되자 수많은 별빛이 맑은 바다에도 내려앉아 물 위에서 영롱하게 반짝였다.

#4 여행 내내 나는 오롯이 대자연 속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정돈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들면 자연을 찾고 결국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듯,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시간이 야속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줄기라는 낙동강을 거슬러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폈다. 잊을 수 없는 섬진강의 보석 같은 물빛을 떠올리며 낙동강의 추억까지 아름답게 담아가려는 심산이었다.

#5 그러나 낙동강의 추억은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았다. 불투명한 페인트를 풀어놓은 듯 강 곳곳은 질퍽한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명과 치유의 상징이었던 녹색이 낙동강에서는 질병과 죽음의 상징으로 변해 있었다. 가장 더웠다는 여름 탓인지, 4대강 사업 때문인지, 한 정치인의 말대로 생활 폐수, 축산 폐수 때문인지, 내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가 긍정의 색으로 여겼던 '녹색'이 지금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반란은 인간에 대한, 개발에 대한, 자연 훼손에 대한 자연의 반란이다.

#6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열흘 뒤에는 온 가족이 고향으로 내려와 한데 모일 것이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 영남권 주민의 식수로 공급된다는 녹조로 뒤덮인 낙동강 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먹으면서 가족들은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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