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인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전범(戰犯)이지만, 공직자로서 자세 하나만은 배울 점이 많다. 공금 관리에는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철저했으며,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지도 않았다. 그가 관동군 참모장에서 육군 차관으로 승진한 뒤 도쿄로 부임하기 전 쓰고 남은 기밀비를 처리한 방식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부임 날짜가 다가오자 도조는 기밀비 사용처를 남김없이 기록해 제출하면서 남은 돈은 1엔 단위까지 계산해 반납했다. 기밀비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임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그가 참모장으로 있으면서 받은 기밀비는 8천만엔에 달했으나 거의 그대로 남겼다. 그나마 쓴 돈도 만주국 내 친(親)관동군 인맥 형성이나 중국인 정보 제공자 관리를 위한 것이었다.
도조가 속한 육군 내 파벌 통제파(統制派)와 대립하던 황도파(皇道派) 장교들은 "도조가 기밀비를 마구 뿌려 자신에게 충성하는 언론인을 키워 자신의 공적을 선전하도록 했다"고 비난했지만, 도조의 부관이었던 이즈미 가키오(泉可畏翁)의 증언에 따르면 도조는 그런 방면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사저(私邸)를 짓는 데서도 도조의 이런 면모는 잘 드러난다. 육군상(相)으로 승진한 뒤 도조는 살던 집이 좁아 새집을 지었는데 완공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건축자재를 제때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건축자재는 배급제로 공급되고 있었다. 도조는 목수들에게 육군상이라는 이유로 특별 배려를 받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호사카 마사야스)
나치 독일의 친위대(SS)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도 도조 못지않았다. 그가 노부모를 관용차에 태워 다닐 때면 반드시 그 비용을 계산해 자기 봉급에서 공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유태인 600만 명의 학살을 주도한 '반인륜 범죄'와는 별개로 공직자로서의 자세만큼은 배울 점이 있어 보인다.
요즘 국무위원 후보자 두 사람의 과거 행적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분통이 터진다. 고위 공직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극빈층으로 등록돼 의료비를 지원받은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들에게는 '개나 물어가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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