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우환 "일본에 한국작가 소개하려고 애썼다"

"내가 일본 것을 끌어들였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내가 오고 한국 미술계에서 일본 냄새가 없어졌어요."

3일 오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우환 공간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이우환(80) 화백은 1960~1970년대 자신이 일본에서 주창한 미술담론인 '모노하'(物派)에 대해 설명하던 중 "한가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나는 당시 한국을 많이 오고가면서도 한국에 일본 작가를 소개한 적은 없다"면서 "오히려 어려운 형편에도 한국 작가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포지엄은 부산시립미술관 안에 있는 '이우환 공간' 개관 1주년을 맞아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조명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심포지엄에는 다테하다 아키라 다마미술대학장 겸 사이타마현립미술관장과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 등이 참석해 이 화백이 1969년 일본에서 출간한 책이자 '모노하' 이론의 근간이 된 '만남을 찾아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화백은 이 자리에서 현재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인 박서보 화백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화백은 "박서보라는 존재가 없으면 오늘날 단색화고 뭐고 없다"며 "모두가 너무나 가난했지만 절실하게 돈을 모아서 작가들이 일본으로 직접 가서 보게도 하고 일본 작가나 비평가가 한국으로 와서 보기도 했다"며 "(이런 노력 덕에) 바깥바람과 통풍이 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그러나 모노하가 단색화 미친 영향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민감한 문제이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심포지엄에선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발언도 나왔다.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여백'에 관해 이야기하며 "점을 찍은 부분과 찍지 않은 부분이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울림이 느껴지게 해야 한다"며 "그냥 점 하나 찍는다고 울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장소, 어떤 위치에 얼마만큼의 힘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그 앞에 서면 캔버스 너머의 벽이나 공간에도 느낌을 주게 만드는 것이 여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각 작업을 할 때도 조각 그 자체가 아니라 조각이 주는 여백에 신경 쓴다고 덧붙였다.

이 화백은 "내 작품은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니라 그 작품을 계기로 주변의 다른 것들, 다른 말로 하자면 '무한'이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시립미술관에 새 조각 작품을 기증한 이 화백은 새 작품 또한 이러한 예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공간' 앞 조각공원에 설치된 신작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은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 2장과 암석 2점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마주보는 형태로, 스테인리스 스틸 판 안쪽은 거울처럼 반짝이며 작품에 다가서는 관객을 비춘다.

이 화백은 심포지엄에 앞서 열린 제막식에서 "보통 조각은 대상만 보지만 제 작품은 (조각)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이 조각이 있음으로써 일어나는 주변의 긴장이나 공간의 울림이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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