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품은 대구 근대로(路)를 걸어본 적 있는가?"
달빛을 친구 삼아 청라언덕, 진골목, 이상화고택, 선화당 등을 거닐며 대구의 지난 이야기와 역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대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하늘이 높아지는 초가을, 햇살 담은 길을 걸으며 근대의 시간을 걸어 보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같은 공간이라도 밤의 빛은 무의식을 무장 해제시키며 시간 여행의 안내자가 된다. 이것이 밤이 주는 매력이다.
요 며칠 사이 SNS를 보면 지난달 27, 28일 진행된 '대구야행, 청사초롱 밝히고 근대路 걷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전주의 한옥마을 못지않게 매력적이네요!' '대구의 밤이 이렇게나 고혹적이었군요!' '평소 평일에 가보지 못했던 문화예술기관을 가볼 수 있어 좋았어요!' 등의 후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문득 유럽의 '뮤지엄 나이트'가 뇌리를 스쳤다.
뮤지엄 나이트는 1997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다. 참여자들은 오후 6시부터 오전 2시까지 베를린 일대의 뮤지엄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돌아볼 수 있고, 클래식 공연, 문화체험 행사, 전시 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날은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까지 연장 운행할 정도니 '뮤지엄 나이트'의 인기를 굳이 상세히 말하지 않아도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독일의 100여 개 도시로 퍼졌고, 프라하, 암스테르담 등 유럽 유수 뮤지엄에서도 유사한 행사를 기획해 '미술관, 박물관은 딱딱하다'는 편견을 깨며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비영리 조직위원회 'N8'을 구성하여 1년에 한 번 '뮤지엄 나이트'를 개최한다. 예술에 큰 관심이 없고, 관련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의 뮤지엄은 각자 성격에 맞는 전시, 공연, 참여 이벤트 등을 기획한다.
N8은 행사 기획에 앞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18~35세'라는 구체적인 계층을 뮤지엄 나이트의 주요 타깃으로 잡았다. 그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뮤지엄에 대해 '관광객들만 북적이는 관광 명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고, 평소 뮤지엄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과 아동 및 청소년층, 노년층이 주 방문 연령층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청년층으로부터는 뮤지엄이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다는 점을 분석한 N8은 뮤지엄 나이트의 주 목적을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젊은 연령층을 끌어들여 뮤지엄에 활기를 불어넣고, 궁극적으로 모든 연령층이 지역 뮤지엄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 두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14년 한 해만 2만7천 명이 다녀간 암스테르담의 '뮤지엄 나이트'는 10년이 넘도록 암스테르담의 대표적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유럽 유수 미술관 사례와 비교할 수 없지만 서울시립미술관, 대림미술관 등 국내 미술관에서도 '나이트 뮤지엄' 개념을 도입해 문화 향유 기회가 적은 직장인들과 시민들에게 이색적인 미술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12년부터 운영한 야간 개장 프로그램 '뮤지엄 데이'를 올해 '뮤지엄 나이트'로 명칭을 바꾸고 '음악으로 듣는 전시'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가 직접 소개하는 전시' '영화로 확장해서 즐겨 보는 전시' 등을 기획해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인력, 그리고 문화기관들의 협력 등 여러 숙제를 해결해야겠지만 이틀간 진행된 대구야행을 바라보며 '뮤지엄 나이트' 기획에 필요한 실제적인 내용들을 짚어본다. 머지않은 미래, 대구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할 '뮤지엄 나이트'가 기대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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