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 하나, 그땐 그랬지] 이해두 대구대 명예교수 유학 시절

아이 친정에 맡기고 뒷바라지했던 아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상징 새터 게이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상징 새터 게이트.

1940년생인 나는 1978년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C Berkeley)에 연구교수로 가면서다. 지금은 없어진 미국 노스웨스트항공 편을 이용, 시애틀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내려 학교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해외 파견 연구교수제'라는 게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국가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교수들을 시험으로 선발, 국비로 연구를 시키는 과정이었다. 필기시험, 외국인 인터뷰 등 무려 8시간에 걸친 영어 시험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선발됐고, 평소 존경하던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가 계시던 버클리캠퍼스 동아시아연구소에 자리를 얻었다. 북한을 6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연구에서 석학으로 꼽히는 스칼라피노 교수는 2011년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의 배경은 버클리캠퍼스의 상징인 새터 게이트(Sather gate)다. 어린 두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가난한 유학 생활을 뒷바라지했던 아내 이춘회(75)와 찍은 사진이다.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 전이니 나도, 집사람도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젊었던 시절이다. 1980년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귀국하려 할 때 동료 교수, 지인들이 한국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조국의 도움으로 공부했던 나는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구대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이었던 이태영 박사는 귀국한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대구경북과 관련한 일에 앞장서 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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