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미국 국경선 3,200㎞에 달해
공장 세워 인건비 아끼는 美 기업 많아
불법 이민자 단속 명분으로 장벽 정책
국가 간 상생하는 글로벌 시대에 역행
2004년에 미국에서 '멕시칸이 없는 어느 날'(One day without a Mexican)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화제를 부른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지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멕시코계 주민들이 사라져서 생긴 소동을 그린 일종의 판타지 코미디 영화다. 너저분해진 상류층 저택부터 개점휴업 상태인 레스토랑과 수확도 출하도 못 하는 대규모 농장, 그리고 방치된 차량으로 마비된 교통 상황과 쓰레기가 널려 있는 길거리 등 도시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졌지만 이를 정리하고 통제할 사람이 없어 경제적 혼란은 극에 달한다. 가정부, 식당 종업원, 농장 인부, 청소부, 경비원 등 힘들고 고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멕시칸인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대우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물어본 풍자 영화다.
미국 인구 중 히스패닉(중남미인들은 스스로를 '라띠노'라 한다)이 5천만 명으로 두 번째 주류 인종이었던 흑인 인구 수를 넘어섰고, 지난 10여 년간 늘어난 숫자만 1천500만 명이 넘을 정도의 급속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 라띠노의 70% 가까이 되는 3천500만 명이 멕시코계이고, 그 대부분이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주 거주자이니 과장된 에피소드이긴 하나 이들이 없는 미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1999년에는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다. 텍사스주의 세니소라고 하는 인구 8천 명의 작은 국경 도시 시의회에서 스페인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선포하고, 모든 공문서는 스페인어로 표기하도록 하였으며 주정주와 연방정부에서 오는 영어 문서는 스페인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조치까지 하였다. 당시의 로드리게스 시장 자신도 영어를 할 줄 몰랐을 뿐 아니라 이 도시 인구의 98%를 차지한 멕시코계 주민들 대부분 또한 비슷한 처지였으니 이러한 언어 정책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시의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시 공무원들에게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는 연방정부 국경수비대에 협조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멕시코가 160여 년 전 벌어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스페인으로부터 물려받았던 국토의 절반을 빼앗겼고 어쩔 수 없이 미국 시민이 된 멕시칸과 그 후손 및 일가친척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러한 조치는 당연하다는 것이 시장의 주장이었다. 또 다른 멕시코의 국경 마을에서는 학교가 없어 아이들을 매일 스쿨버스에 태워 미국 쪽 초등학교로 통학시키는 일도 있었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은 대구와 서울 간 거리의 10배인 3천200㎞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 국경선을 따라 멕시코 쪽에 공장을 세워 인건비 절감 혜택을 보는 미국 회사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고, 매일 국경 넘어 출퇴근하며 달러벌이하는 멕시코 근로자들도 많다. 같은 인디언이라 해도 변변한 문명을 이루지 못한 미국의 원주민에 비해 마야와 아스테카 같은 찬란한 고대문화를 간직한 멕시코인들은 자부심이 있다. 실제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총기 살인이 사방에서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고, 마약조직 간 살인이 대부분을 차지할 뿐 일반인은 오히려 피해 입을 확률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영화에서 묘사한 '의로운 미국인과 악당 멕시코인'의 이미지 때문에 '위험한 멕시코'로 낙인찍혀 버린 억울함(?)도 있다. 더구나 국경의 마약조직 범죄는 미국 측의 거대한 마약 시장을 소탕하지 않는 한 막을 수가 없다. 현실이 이럴진대 트럼프의 장벽 정책은 비록 불법이민자 단속이란 명분을 내걸었지만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한국도 지금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이 10만 명에 달하고, 웬만한 중소기업이나 고된 업종 중에는 동남아 출신 근로자가 없이는 안 돌아가는 곳이 꽤 된다. 아직은 미미하나 그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고 수십 년 후에 이들의 영향 또한 무시 못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그렇고 나라 간에도 그렇고 공동체 구성원 간에 상생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새삼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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