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 낼 세세한 일들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다.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도 실록을 만들었지만 조선에 비할 바 아니다. 이 가운데 압권이 승정원일기다. 승정원은 요즘 청와대 비서실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승정원일기는 왕의 국정운영 전반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짜 순으로 기록했다. 일기는 날짜를 적고 날씨를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날씨는 세밀하게 적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를 적는 방법만 100가지가 넘을 정도였다. 오전에 맑았다 저녁에 비가 내리면 조청석우(朝晴夕雨)라 기록하는 식이다. 비도 그냥 비라 적지 않았다. 한자로 가랑비와 보슬비를 구분하고, 또 보슬비와 부슬비를 구별했다. 날씨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니 일기의 목적인 왕의 언행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심지어 왕이 술자리에서 누구에게 술을 따랐다는 것까지 기록했다.
조선 초부터 선조 때까지의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현존하는 것은 인조 1년부터 순종 4년까지 288년간의 기록이다. 그 양이 3천245책에 자수로는 2억4천250만 자나 된다. 전 세계 역사 기록물 중 가장 방대하다. 반쪽짜리 기록이 이 정도다. 중국의 전 역사를 기록했다는 '이십오사'(二五史)가 4천만 자 정도인 것과 대비된다.
승정원일기는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뿐 아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일성록 등 13건의 세계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에선 1위, 세계에선 4위다. 역사기록물로만 보면 단연 세계 1위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는 했지만 그 내용은 지금도 해독 중이다. 현재 한글로 번역된 것은 5분의 1 정도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평생을 바쳐도 다 읽기 어렵다. 지금 추세라면 승정원일기를 완역하기까지 앞으로 50년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선조들이 일상사를 낱낱이 기록한 까닭은 후대에서 교훈 삼기를 기대했을 터지만 정작 후손들은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때맞춰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의 기록 관리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록 문화를 탐구하는 '세계기록 관리 협의회'를 열고 있다. 세계 190여 개 나라에서 2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에게 '완역되지 않은' 승정원일기가 스토리텔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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