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포항시장의 당숙(堂叔)은?

출세한 사람에게 친인척은 어떤 존재일까? 성가시고 귀찮지만, 그렇다고 멀리하기도 힘든, 복잡미묘한 관계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혈연만큼은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완벽하게 구현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때였다. 아들, 동생, 처남, 처삼촌 등이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됐으니 그야말로 '친인척 비리의 백화점'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친인척 비리가 계속 터졌으니 한국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과거다. 집안에 권력자가 나왔다고 사돈에 팔촌까지 한몫 잡겠다고 설치는 것은 권력자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컸다.

역대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렇게 대형 사고를 칠지는 몰랐어도, 어느 정도 알면서 방관 내지 방임했을 것이다. 나쁜 소문이나 보고가 올라와도 '믿기 싫어' 그냥 흘려보냈을 뿐이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가깝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근령 씨의 사기 사건이 화제다. 일부에서는 친인척 비리라고 공격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권력형 비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과 근령 씨의 사이가 틀어진 것을 누구나 아는데, 박 대통령을 보고 돈거래를 할 사람이 있을까? 박 대통령은 2014년 말 '십상시 사건' 이후 동생 지만 씨와 절연하다시피 했고, 그와 친한 인사들까지 무자비하게 내쳤다. 박 대통령이 측근'참모를 쓰는 것은 영 신통치 않은데, 친인척 관리만큼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다.

대통령이 냉혹하리만큼 친인척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일부 자치단체장은 혈연에 대해 너무나 관대하고 아량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대표적인데, 자신의 5촌 당숙을 고속 승진시켜 구설에 올랐다. 이 시장의 당숙은 이기권 포항 남구청장으로, 이 시장과 같은 장기면 출신이다. 그는 2014년 이 시장의 당선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5급 과장이던 그는 다음해 1월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해 포항시의 핵심 요직인 창조경제국장을 맡았다. 1년 6개월 동안 시청에서 '실세'로 불리다가 지난 7월 남구청장에 임용됐다.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탓에 올 연말에 물러나는 6개월짜리 청장이다.

이 구청장이 무능력하거나 평판이 나쁜 분은 절대 아니다. 시장 친척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봐서도 곤란하다. 그렇지만 시장 친척이라고 특혜를 받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구청장은 포항시 공무원들이 말년에 가장 갈망하는 자리다. 기관장 역할을 하고 일정 부분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시장이 자신의 당숙을 요직에 앉힌 데 이어 구청장까지 시키니 공무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시장은 해양경찰청장 출신으로 '원칙'과 '청렴'을 앞세우고 이를 직원들에게도 요구하는 분이다. 그런 분이 자신의 친족에 대해서는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시장은 "순서가 됐고 능력도 있어 임명했다"고 해명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김영석 영천시장도 인척 관리를 잘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7월 김 시장의 인척은 영천시 공무원으로부터 인사 청탁 중개를 부탁받은 대가로 2천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흥미로운 것은 돈을 준 공무원이 5급 승진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인척의 입김이 김 시장에게 통했는지, 안 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공무원이 '바보'가 아닌 이상 헛되이 돈을 쓸 리는 없다.

대구경북에서 일부 단체장의 친인척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끊이지 않는다. 친인척이 인사'이권 등에 개입하면서 공공연하게 설친다는 소문이 계속 흘러나온다. 권력 주변에는 늘 파리가 꼬이는 만큼, 장(長)이라면 무릇 친인척의 행동을 경계하고 제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경구를 되새겨야 할 분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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