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첨복단지의 한숨] 3년 된 신약센터 190명 정원에 60여명 겨우 채워

의료기기센터 113명 정원에 48명 "이마저도 떠날까 걱정"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연구원들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에 몰두 중이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연구원들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에 몰두 중이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료재단)에 대한 내년 국비지원이 대폭 삭감될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본지 7일 자 1, 3면 보도)이 알려지면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첨복단지)가 앞으로 제 기능을 할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첨복단지 연구원'직원은 물론, R&D 지원 약속을 믿고 첨복단지로 입주한 의료기업들 사이에서도 중앙정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다 문 닫나?' 술렁대는 첨복단지

"외국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신약개발에 8~1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센터를 연 지 3년 만에, 그것도 정원의 30%에 불과한 인력으로 성과를 내라니요?"

첨복단지 신약개발지원센터의 한 연구원은 "국비 삭감 소식을 접한 연구원들 사이에 '이러다 이직을 알아봐야 하나?' 벌써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신약센터는 첫해 10여 명으로 개소했고 올 들어서야 60여 명을 채웠다. 애초 첨복단지가 목표한 정원 190여 명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인력"이라며 "타 연구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에도 자부심 하나로 일해왔는데, 능력 있는 연구자들이 떠나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기기센터의 또 다른 연구원도 정부의 일방적인 조기 자립화 요구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타 기관과 똑같은 비용을 받고 테스트를 해주거나 장비를 이용하도록 한다면, 의료 중소기업들이 굳이 첨복단지를 찾겠는가"라며 수익성만 강조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의료기기센터 역시 목표 정원은 113명이지만, 현재 인원은 48명에 불과하다. 특히 전문인력이 태부족하다. 기업 수요가 많은 MRI'CT 등 영상실의 방사선 운영인력과 시제품제작실의 PCB(전자회로설계)'CNC(선반) 가동인력이 부족하다. 한 연구원은 "때로는 연구원들이 장비 사용법을 배워가며 쓰고 있다"고 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첨복단지의 이직률도 낮지 않다. 의료재단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첨복단지를 떠난 직원은 34명(현원 206명)이다. 그중 절대다수가 연구직으로, 타 병원, 기업,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누가 첨복단지 오겠나?' 기업들 격앙

첨복단지에 입주한 중소 의료기업들은 더 격앙된 반응이다. 현재 첨복단지와 인근 의료R&D지구에는 첨복단지 연구센터의 지원을 기대하고 입주를 마쳤거나 입주 예정인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이 114곳이다.

치과의료기기 전문기업인 S사 관계자는 "(국비지원 삭감이) 황당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S사는 20억원을 투입해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첨복단지에 연구소를 짓고 있다. 업체 측은 "기업들이 첨복단지에 들어가는 이유는 첨복단지 각 연구센터의 기술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첨복단지는 지금도 인력부족으로 기업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데, 인력이 줄어든다면 기업 지원 서비스의 질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의료기기 업체인 I사 대표는 "이런 식이라면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정부를 믿고 투자하겠나"라며 화를 냈다. 서울에 본사를 둔 I사는 2014년 타지역에 있던 공장을 35억원을 들여 첨복단지로 이전해 온 터였다. 그는 "기업 지원은 성과를 내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며 "인건비 부족으로 첨복단지 인력이 줄면 기업들만 골탕 먹을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기기 업체 U사의 대표는 중앙정부의 '근시안적 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이 기업은 첨복단지 실험동물센터로부터 제품 시험 테스트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첨복단지의 고가 시험장비와 전문인력은 중소기업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첨복단지 인력이 줄면 이런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많은 기업들이 첨복단지와의 공동연구를 기대하고 있는데, 정부가 첨복단지 자립화를 강요하는 것은 기업을 상대로 수익을 올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첨복단지는 대구 것?' 중앙부처 시각 바꿔야

중앙부처는 2018년부터 의료재단의 100% 자립화를 요구하며, 재단에 대한 내년 국비 예산 지원을 올해 대비 30% 삭감했다. 의료재단이 인건비나 운영비를 자체 조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의료재단이 처한 원천적인 제약이 있다. 중앙부처는 의료재단에 대해 연구개발지원기관으로서의 '지원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여타의 출연연구기관 등과 달리 과제에서 내부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다. 기업 등으로부터 외부 연구개발과제를 수탁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공공기관으로서 자립화를 앞세워 기업들을 상대로 무턱대고 높은 장비 수수료나 기술이전 수수료를 챙길 수도 없는 형편이다.

첨복단지를 다(多)부처가 관할하는 복잡한 거버넌스도 또 다른 제약이다. 첨복단지는 현재 보건복지부가 주무관청이지만, 4개 연구센터와 본부의 소관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로 제각각이다. 여기에 예산권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형국이다. 장기적인 자립화 논의 등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런 과정에 중앙정부가 첨복단지 지원을 대구시 등 지자체에 미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는 현재까지 매년 30억원의 인건비'운영비를 첨복단지에 지원하고 있으며, 추가 지원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최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그동안 첨복단지 자립화를 위한 여건도 제대로 조성해주지 않고 자립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첨복단지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신약'의료기기 개발을 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자는 것이고, 그 효과가 국가 전체에 돌아가는 만큼 국가가 운영비 등을 제대로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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