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휴가기간 딸 아이가 있는 캐나다를 다녀왔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수차례 유럽과 미국 출장을 다녀왔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항상 렌터카를 이용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직접 차를 몰았다. 휴가인데다 가족들이 타고 있어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교통 법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신호등이 없는 좁은 길에서도 '정지' 표시가 있으면 항상 정차를 했고 고속도로에서도 제한속도를 지켰다. 하지만 한국 교통 습관에 익숙한 나에게 정숙한 운전은 상당한 인내심을 수반했다.
캐나다 토론토 인근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800㎞, 뻥 뚫린 도로에 차도 많지 않았지만 속도판은 항상 120㎞를 넘지 않았다. 감시카메라 한 대 없는 10여 시간의 운전 시간 동안 머릿속은 계속 '과속'의 유혹을 극복하느라 힘들었다. 며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몸도 마음도 출발 때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미주식 운전이 손에 익으면서 '추월'이나 '과속', '감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쾌적한 운전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한국의 운전 습관은 왜 다를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통정체를 만났을 때 앞차와 내 차 사이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누군가 슬그머니 끼어들기를 한다. 한두 대를 지나 몇 대가 끼어들면 본능적으로 방어 의식이 생기고 옆 차를 의식한 운전을 하게 된다. 바쁜 일정이 없는 고속도로에서도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면 쉽게 참지 못하고 또 누가 내 차를 추월하면 쉽게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 대한민국 상당수 운전자들의 습관이다. 법과 규칙을 어기며 사는 습관이 운전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어릴 때부터 요구하는 '무한 경쟁 문화'도 일부분 자리 잡고 있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마침내 이달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종사자 등 대상이 광범위한데다 시행 전인 탓에 법 적용을 두고 애매한 부분도 상당하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앞으로 대상자들은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한도 내에서만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구체적인 식사비 금액까지 제시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청탁이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고가의 식사나 선물, 경조사비는 결국 특정한 이익을 전제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소한 청탁에서 시작돼 부정이나 비리로 연결되곤 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청렴을 요구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사소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결국 좀 더 큰 편의에도 쉽게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연이어 터지는 법조비리처럼 이러한 편의는 결국 '청탁'과 연결돼 있다.
일부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지금도 발행량에 비해 유통량이 지극히 적은 '5만원'짜리 지폐가 더욱 증발할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식사나 술, 골프 접대를 못하는 만큼 주고받기 쉬운 현금, 특히 5만원권이 청탁의 수단으로 애용될 것이란 설명이다.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 연줄이나 청탁을 통하지 않으면 쉽게 사업이나 일 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탁과 이를 위한 편의 제공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관행이란 이름으로 지속돼 왔고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김영란법'이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일부이지만 청탁을 하는 대상자는 전 국민인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고도 성장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목적 달성'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규칙을 지키는 편안함'을 잊고 살아왔다. '김영란법'이 국민들에게 불편함이 아니라 편안함을 주는 법으로 안착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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