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어느 실향민의 소원

조국이 분단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금방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남쪽으로 내려온 많은 실향민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고 있다. 살아 계시는 분들은 적어도 80세 가까운 나이이고, 평균 나이는 90세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가보고 싶은 고향을 갈 수가 없는 아픔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지난 3일 포항에서 '영남권 북한이탈주민 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여든이 넘은 실향민과 점심을 같이 먹으며 그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전후에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더욱 아픕니다.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이 부모님에게, 친척들에게 푸념을 많이들 하잖아요. 평소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려 고향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걸어서라도 고향에 가라고 하면 몇 시간 아니라, 며칠이 걸려서, 몇 달이 걸려서라도 가고 싶습니다."

이어서 그 어르신은 이런 말도 하셨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을 보면 명절을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데 진정으로 모실 부모님과 친척이 주위에 있는 것이 행복한 거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어릴 적 명절이면 더욱 외로움을 느낀 기억이 나면서 마음 저 밑에서 울컥하는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실향민 2세로서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고향을 잃은 슬픔과 한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하면서 참았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후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향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그 1천만 이산가족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밤과 낮도 없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위해 열심히 피와 땀을 흘렸음은 인정하여야 합니다."

전쟁 후 나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이분들이 모든 국민과 함께 고생한 이야기에 감사의 마음이 가슴 저 밑에서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정말 열심히 사시다가 저세상으로 가신 내 아버지 생각도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먼저 온 통일'이라는 백구섭 이북5도 위원장 겸 평안북도 도지사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보여준 관심과 지원에 감사드리는 마음이 샘솟았다. 통일이 된 후 함께하게 될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서 통일을 향한 더 많은 연구와 실천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3만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도 '먼저 온 통일'의 주역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도 앞으로 통일 시대를 준비하고 북한 지역의 주역이 되도록 국가에서 교육도 시키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향민 2, 3세들은 이산가족 1세들이 가졌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향민 2, 3세들도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북한 땅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할 시기이다. 실향민 2, 3세들이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통일에 대한 꿈을 모으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실향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국론이 하나로 모여 통일을 이루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실향민들의 바람이다. 그분들은 북한의 실상을 직접 체험하고 겪고, 살아온 사람들로서 누구보다 북한 정권의 실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분들은 통일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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