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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가르치려 고른 千字文, 속 깊이 읊다 내 인생공부…『천자문 공부』

천자문 공부/윤정대 지음/동아일보사 펴냄

우리는 흔히 '천자문'을 어린 아이들 한자 학습서 정도로 알고 있지만, 천자문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1천 자(병자와 병자 중복으로 정확하게는 999자) 가운데 211자는 상용한자 1천800자 안에 들어 있지 않은 한자다. 211자 가운데 100자는 요즘은 쓰이지 않는 옛 한자다. 그만큼 어려운 한자들로 구성돼 있다. 천자문이 아이들에게 문자를 가르칠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우주, 자연, 인간, 역사, 사회, 정치 등에 관한 지혜를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윤정대 변호사가 '천자문 공부'를 쓰게 된 것은 자녀들 때문이다. 각각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세 딸과 막내아들이 단어 뜻을 물을 때마다 한자로 뜻을 풀어 설명하면서부터다. 한자로 풀어서 설명하면 단어 뜻이 정확하게 파악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물을 때마다 가르쳐 주던 것을 3년 전 아이들 겨울방학 때는 아예 집 거실에 '서당'을 차리고 한자를 가르쳤다. 거실 벽에 화이트보드를 걸고, 그 앞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글자를 가르쳤고, 그에 얽힌 이야기와 글자를 통해 볼 수 있는 사람살이와 세상 이치를 들려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은이 윤정대 변호사는 중학교 1학년 때 열국지(列國志)를 읽기 시작했고, 이후 삼국지, 사기, 채근담, 명심보감, 논어, 대학, 장자, 도덕경 등을 즐겨 읽고 외웠다. 고등학교 때 노트 필기 대부분을 한자로 쓸 수 있을 만큼 한문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자녀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려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생소한 글자도 더러 있었고, 게다가 1천500년 전의 책이라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지은이는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면서 나 스스로 많은 공부를 했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풀이하는 수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전달하려니 새로 공부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책방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천자문 책을 구해 읽었지만 한자 학습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풀이에 더해 현대에 맞는 풀이를 더하는 책까지 직접 쓰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천자문은 글자 하나하나를 알고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주와 자연, 나라와 정치, 효와 충, 배움, 타인과 관계, 습관, 행동, 시간, 도리, 예악, 가족, 자녀, 형제, 인의와 지조, 지리, 사람의 도리, 농사와 세금, 일상의 자세 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천자문의 세 번째 연(聯) '寒來暑往 秋收冬藏'(한래서왕 추수동장)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어째서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간다고 추위를 앞세우는가' 묻고 '추세를 이끄는 힘은 가는 것에 있지 않고 오는 것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앞에 있던 것이 물러나고, 뒤에 있던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 뒤에 것이 옴으로써 앞의 것을 밀어낸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사도 그렇고,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발명품이 나옴으로써 앞선 발명품은 쓸모를 다하고, 후배가 치고 올라옴으로써 선배는 밀려난다. 청동기가 들어오고 신석기 시대가 끝이 난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제도를 왜 그대로 쓰느냐고 타박할 일이 아니라, 더 합리적이고 새로운 제도를 제시하면 오래되고 비합리적인 제도는 밀려나기 마련이다.

지은이 윤정대 변호사는 "내가 만약 한문을 직업으로 하는 교수였다면 천자문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틀에 갇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790쪽, 2만2천원.

▷ 지은이 윤정대는…

대학 졸업 후 매일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4년간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신문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뛰어난 우리말 표현과 한자 실력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정연한 글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천자문은 단순히 한문 실력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변호사 생활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굴곡진 인생을 보았다. 그런 경험과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천자문을 오늘날 현실에 맞게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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