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 한국·중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은 바뀌었을까

'로세타호 만한순유 기념 사진첩'에 실린 일본인 여행단 단체사진과 조선인 어린이 사진.(東京朝日新聞會社, 1906. 10)

1906년 아사히신문은 조선과 만주 시찰을 위한 여행단을 모집하고, 여행 일정을 담은 사진첩을 발행한다. '로세타호 만한순유 기념 사진첩'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첩에는 부산, 인천, 경성, 평양을 비롯하여 만주 이곳저곳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중, 조선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주목을 끈다. 사진 속의 어린이는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때가 낀 듯 새까만 알몸에 머리는 봉두난발을 하고 있다. 그 소년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냥 그렇게 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 그 사진 몇 장 앞에는 세련된 서양 복장에 양산까지 든 일본인 시찰단의 단체 사진이 실려 있다.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 너무나 거리가 먼 두 개의 세계가 이 두 장의 사진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만주와 사할린, 그리고 조선 지배권을 얻은 것이 1905년, 그 1년 후인 1906년을 기점으로 조선과 만주 유람을 위해 수많은 일본인 여행단이 조선으로 건너온다. 아사히신문 사진첩에 실린 '만한순유(滿韓巡遊)여행단' 역시 그중 하나였다. 사진첩에 실린 아사히신문 기자의 글을 빌리자면 그 여행의 목적은 제국의 신영토를 확인하고, 제국의 경계를 대륙으로 무한하게 확장하는 데 있었다. 제국의 식민지를 둘러보는 우월한 자로서의 시선이 앞의 사진첩에 스며 있었던 것이다.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의 '조선'(朝鮮'1912)은 신영토 조선에 대한 여행안내서와 기행문이 속속 등장하던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 소설이다. 하이쿠(俳句) 시인 다카하마 교시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일본인의 조선 이주가 대거 시작되고, 일본인 여행단이 물밀듯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1911년으로, 이때의 경험을 다룬 것이 소설 '조선'이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아내와 함께 경성과 평양을 여행하면서 만난 조선인과 일본인 모습, 그리고 조선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친구와 기생집을 찾아갔다가 앞서 와 있던 조선인 손님이 자신들 때문에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남의 화원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을 느끼며 미안해하는가 하면, 길가에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조선 노인을 보며 피정복민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그 반면, 평양을 방문해서는 평양과 기생을 조합한 상품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식민지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무시하자니 작가의 정직성이 뒷덜미를 잡고 있었고, 일본 침략을 비판하자니 조선에서 만주에 이르는 제국의 신영토에 대한 정복자의 들뜬 희망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의식 있는 일본인의 시선은 이 언저리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다.

다카하마 교시의 '조선'이 발표된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났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사드 한국 배치 문제를 둘러싼 일본, 미국, 중국의 엇갈린 시선에서 100년 전 역사를 새삼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조선을 교두보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 일본과, 조선을 방패막이로 하여 일본의 진출을 저지하려던 중국, 그 사이에 끼어든 서구 열강, 이들의 복잡한 욕망의 흐름이 지금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한국은 얼마나 자주적으로 이 관계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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