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춘향진이 정절을 그렸다고? 진짜 메시지는…『신로맨스의 탄생』

사랑을 지키려는 인간적인 의리!

신로맨스의 탄생/신동흔'서사와치료연구모임 지음/역사의아침 펴냄

우리 고전문학을 사랑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보는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 고전문학작품을 읽는 틀로 사용돼 온 권선징악이나 삼강오륜 같은 유교주의의 뻔하고 고루한 요소들은 잠시 구석에 처박아 두자.

찾아보면 우리 고전문학은 사랑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참 많다. '금오신화'(조선 초기, 김시습 작)의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부터 아예 대놓고 애정 서사를 펼친다. '구운몽'(조선 후기, 김만중 작)도 성진과 팔선녀 그리고 양소유와 여덟 낭자의 인연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춘향전'(조선 시대, 작자 미상)은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은 우리나라 대표 로맨스다.

이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사랑 주제의 고전문학 작품들을 참 재미없게 읽어야 했다. 교과서 때문이다. 수능시험 문제만 봐도 그랬다. '구운몽'의 주제를 물으면 우리는 너도나도 기계처럼 '인생무상'이라는 답만 적어야 했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이 시공을 초월한 대단한 애정 소설이라는 점도 애써 무시해야 했다. 대신 두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라거나 저자 김시습이 처한 현실적 갈등이 작품에 반영됐다는 등, 독자의 감상에 도움을 주는 정보라기보다는 시험문제 출제자나 학습지 및 학원 관계자 등의 밥벌이를 위한 내용을 달달 외워야 했다.

오랜 시간 '춘향전' 해석의 틀로 사용된 것도 유교, 그중에서도 '정절'이었다. 성춘향이 이몽룡을 위해 정절(여자의 곧은 절개)을 지켰으니,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는 얘기다. 한번 짚어보자. 그 유교라는 것은 건강한 유교주의가 아니라 실은 남성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폭력적인 가부장주의는 아니었을까. '절개, 그거 지키면 열녀비를 세워주겠어. 하지만 못 지킬 거라면 은장도로 자결해버려.'

마침 이 책은 '춘향전'을 다룬다. 이야기의 막바지, 어사가 돼 남원 고을로 돌아왔으나 아직 자신이 이몽룡임을 드러내지 않은 몽룡이 군중 앞에서 성춘향에게 이렇게 묻는다. 변학도 대신 자신의 수청을 드는 건 어떻겠냐고. 그러자 춘향은 몽룡과의 사랑을 저버릴 수 없다고 온 힘을 다해 항변한다. 이 장면을 단순히 보면 몽룡이 춘향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냥 요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애절한 발라드 가요를 배경에 깐 채 달려가서 콱 끌어안아주지.

그런데 책은 이 장면을 몽룡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으로 해석한다. 앞서 몽룡이 옥중의 춘향에게 자신이 어사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몽룡은 조금 기다렸다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춘향이 얼마나 고결한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인지를, 그래서 춘향이 자신보다 더 크고 훌륭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면서 춘향이 기생 신분이지만 어사가 된 자신과 짝을 이루고도 남을 사람임을 공고히 한 것이다.

이래도 이 이야기의 핵심을 춘향의 정절이라고 해석할 텐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사랑을 지키려는 인간 대 인간의 의리일 것이다. 몽룡은 춘향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어코 남원 고을로 돌아왔고, 춘향도 몽룡과의 의리를 지키고자 힘든 고문에도 감옥에서 버텼다. 두 사람의 진심은 결국 통했다. 춘향전이 요즘 연인들에게 전하는 진짜 메시지다.

춘향전을 포함해 책은 이선과 숙향의 '숙향전'(상대의 고통까지 끌어안는 사랑), 양생과 여귀의 '만복사저포기'(좋은 이별, 사랑의 또 다른 이름), 흥보와 아내의 '흥보가'(고통 앞에 미소를 잃지 않다) 등 우리 고전문학작품 17편 속 로맨스를 기존과 다르게 해석한다. 해피엔딩을 맞는 작품도 있고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작품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21세기에 요긴한 사랑의 기술들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기술은 상대방을 '꼬시는' 테크닉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원리나 철학에 가깝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수능 수험생들은 이 책을 수능시험 친 다음에 읽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동일한 작품의 주제나 의미의 경우 이 책이 건네는 설명과 수능시험 문제의 답이 달라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어서다. 34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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