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길 바랐다

영남대 졸업. 현 예술문화협동조합
영남대 졸업. 현 예술문화협동조합 '청연' 상임이사. 현 복합문화공간 '물레책방' 대표

나는 지금까지 네 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란 걸 믿으며 늦지 않게 꼬박꼬박 투표장에 나갔다. 두 번은 내가 투표한 후보가, 두 번은 내가 투표하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땐 뛸 듯이 기뻤지만, 그렇지 않았을 땐 한없이 슬펐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투표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랐다. 그 바람으로 지난 3년 6개월을 살았다.

그러나 2013년 박 대통령 집권 초부터 정부조직법 개정 논란과 인사 검증 문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시작으로 이듬해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들이 잇달아 낙마했다. 정윤회 문건과 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도 그해 연말에 있었다. 2014년에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메르스 사태, 노동시장 개혁,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웠다. 올해도 연초부터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이어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 후폭풍으로 4'13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하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다. 지난 7월엔 갑작스러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성주 군민과 김천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가장 최근엔 현 정부의 국가 채무, 적자성 채무, 순국가 채무가 모두 역대 최고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민 1인당 부담액을 기준으로 봐도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라는데 역대 정부별로 비교했을 때도 증가 규모가 가장 크단다.

이쯤 되면 이번 정권을 실패한 정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죽하면 박 대통령 집권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한 거대 보수신문조차 등을 돌렸을까.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마치 야당지처럼 집요하게 청와대를 공격하는 모습은 박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순간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친박 세력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발 빠른 판단. 그러나 이어 우 수석 비리 의혹을 보도한 신문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고액 접대를 받았다는 폭로가 잇달으며 전례 없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정권 후반기에 레임덕이 가속화되면서 폭락하는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 정권이 저지른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마침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자방'으로 일컬어지는 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같은 비리를 끝도 없이 저지른 부패 정권이다. 특히 지난 폭염으로 4대강사업 녹조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무려 1천300만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간암을 일으킬 정도로 치명적인 독소가 녹아든 물로 만든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환경부 지정 4급수 지표생물인 실지렁이가 상수원 인근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니 22조원의 혈세를 들여 이게 무슨 짓인가.

총체적 난국에 숨구멍을 내어줄 이런 '호재'를 가만히 두고 있는 건 '이명박근혜'가 조어에 불과하지 않다는 방증일까.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는 이유가 나는 몹시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왜 우병우를 버리지 못하는지 만큼이나.

사드 배치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던 지난 7월 중순 박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성주 성원1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걸려 있던 박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낸 일은 하나의 상징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경북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 44.6%에서 34.3%로 폭락했다고 한다. 풀어야 할 숙제는 너무 많은데, 답안지를 쥐고 있는 이들은 그걸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저질렀고 저지르고 저지를 악행들을 곱씹으며 남은 1년 6개월을 실패한 대통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은 참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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